가슴 속 한 켠에 자리한 마음의 고향

이국적인 풍광으로 유명한 동명동 성당의 풍경.

영수 씨 가족에게 속초는 특별한 장소다. 이북 출신인 아버지가 속초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기에 어릴 적부터 자주 갔었고, 여동생과 마지막 시간을 보낸 곳도 속초다. “올해 1월에 동생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마지막으로 함께 여행을 왔던 게 속초였죠.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어릴 적 추억도 가득한 곳이라 남다른 의미가 있네요.”
영수 씨와 어머니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아름다운 풍광으로 유명한 동명동 성당이다. 동명동 성당은 속초에서 가장 오래된 석조 건축물로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10월 1일에 인가 받은 후 1년 만에 완공됐다. 수복지구 안에서 이주 난민을 위해 만들어진 성당이라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동해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고지대에 위치해 해돋이 명소로 유명한데, 최근에는 이국적인 성당 건물과 아름다운 풍광이 어우러져 인생샷 장소로 각광받고 있다.
갑작스런 추위로 찬 바람이 강하게 불었지만 눈앞에 펼쳐진 푸른 바다와 수평선은 그대로다. 영수 씨는 옷깃을 여미면서도, 어머니와 손을 꼭 잡고 나란히 걸어본다. 동명동 성당의 이국적인 모습을 배경 삼아 모자의 대화가 이어진다. “이렇게 예쁜 장소가 있었네. 속초 풍경도 잘 보이고 좋다.” 어머니의 말에 영수 씨는 슬며시 미소를 지어본다.

우연히 빠져든 도박, 인생을 바꿔놓다

그가 도박을 알게 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 고모가 계신 미국으로 유학을 가면서부터다. 어렵게 비자를 받아 떠난 유학이었지만, 카지노 VIP였던 고모를 따라 카지노에 조금씩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몰랐고, 그저 신기한 곳이라고만 생각했어요. 구경을 하면서 어깨 너머로 게임을 터득하고, 한국에 들어왔을 때는 강원랜드에 방문해 하나씩 배워나갔죠. 나중에는 딜러로 취직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카지노에 흥미를 가지게 된 영수 씨는 캐나다에서 블랙잭 자격증을 따며 꿈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 하지만 설렘도 잠시, 도박 빚이 계속 늘어나며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영어강사를 하며 잘 나갔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인과 가족은 물론 사채 빚까지 지면서 기본적인 생활이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다 2015년, 영수 씨는 처음 KLACC을 찾았다. 전문위원과의 상담을 통해 단도박에 대해 조금씩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1년 정지, 3년 정지를 거쳐, 올해 3월에 영구정지를 신청했다. “암 재발로 여동생이 죽고 나서 스스로에게 다짐했어요. 단도박을 하고 어머니와 잘 살아보겠다는 결심이었죠. 그래서 어머니를 모시고 KLACC에 찾아간 거예요.”
그의 어머니는 단도박 하겠다는 아들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착실하고 모범생이던 애가 왜 갑자기 카지노에 빠졌는지 모르겠어요. 카지노에 간다고 할 때마다 말리고, 달래고, 별 짓을 다한 거 같아요. 그 동안 맨날 도박 안 한다고 하면서 끊지 못하는 모습을 봐왔잖아요. 갑자기 도박을 안 하겠다는 말을 어떻게 믿겠어요.” 하지만 조금씩 변해가는 영수 씨를 보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카지노에서 보낸 30년의 세월을 돌이킬 수는 없지만,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을 게을리 할 수는 없었다. 영수 씨는 빚을 갚기 위해 대리운전과 지방 탁송을 병행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일거리가 없어 어려운 상황이지만,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더불어 KLACC 직업재활훈련을 통해 드론을 배우며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행복을 향한 새로운 한 걸음

동명동 성당에서 인생샷을 남긴 모자는 청초호로 이동했다. 청초호는 황소가 드러누운 듯한 모습이 인상적인 호수다. 5km의 호수 둘레를 따라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으며, 주변에는 근대산업시설을 활용한 카페와 음식점이 가득하다. 산책로를 걷던 두 사람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여유를 가져본다. 영수 씨는 “도박을 하면서 깨우친 게 많아요. 앞으로도 오늘처럼 어머니와 여행을 다닐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라며 나중에 미국에 갈 기회가 된다면, 카지노 딜러의 꿈을 이뤄보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에 어머니는 “도박은 절대로, 다시는 안 했으면 해요. 성실하게 노력해서 사는 모습을 보고 싶네요.”라며 아들의 미래를 응원했다. 멀고도 험했던 30년의 세월을 지나, 더 나은 삶을 향해 달려갈 영수 씨와 어머니의 앞날에 행복이 가득하길 바란다.

"오늘처럼 어머니와 여행을 다닐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엄마와 아들의 수다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