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좋으면 나도 좋은걸

“단순히 재미로 글을 올렸어요. ‘친구들이 보면 재미있어 할까?’ 딱 그 정도의 생각으로 가볍게 시작했는데, 이제는 직업이 됐죠. 제 삶에서 가장 부자연스러운 순간이었던 거 같아요.” 2013년, <서울 시>라는 책을 펴내며 우리 곁에 나타난 하상욱 작가는 평범한 일상을 센스 있는 표현으로 정리하며 주목받았다. 재미로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좋은 반응을 얻었고, 주변 사람들의 권유로 전자책을 냈으며, 이것이 화제가 되어 책까지 출간했다. 글로 돈을 번다는 의도나 기대가 없었기에 평범한 직장인에서 일명 ‘시팔이’가 된 지금의 변화는 너무 이상한 일이라고 말한다.
게다가 하 작가는 음원까지 낸 ‘시잉여송라이터’다. 시를 쓴 건 우연이었지만, 노래를 만든 건 그의 의도대로였다. “어릴 때부터 내 이름으로 된 노래를 한 곡 정도는 갖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노래하는 것도 좋아하고요. 제가 쓴 글을 노랫말로 <회사는 가야지>부터 <축의금>, <좋은 생각이 났어, 니 생각>, <다 정한 이별>, <새해 복, 새 행복>까지 5곡을 발표했죠.” 그는 글을 쓰던 사람이 갑자기 노래를 발표한다고 하면 대중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며, 자신의 이미지에 맞는 노래를 먼저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탄생한 곡이 바로 <회사는 가야지>와 <축의금>이다. 특히 그의 첫 노래 <회사는 가야지>는 ‘회사는 가야지. 먹고는 살아야지. 금요일인 줄 알았는데 오늘이 목요일이라니’는 가사로 시작하며, 평범한 직장인의 삶을 통해 일상에 지친 이들을 위로한다.

"친구들이 보면 재미있어 할까?’
딱 그 정도의 생각으로 가볍게 시작했는데,
이제는 직업이 됐죠.”

초심은 잃어도 조심은 잃지 말자

살다 보면 삶의 장면 장면에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어떤 순간은 위기 속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며, 또 다른 순간은 두고 두고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는다. 하상욱 작가는 어느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을까? “살면서 가장 보람 있는 순간은 정산을 받을 때예요. (웃음) 제가 만든 콘텐츠를 사람들이 소비한다는 증거니까요.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제 신념을 버린 적도 없죠. 지키고 싶은 나의 것들, 잃고 싶지 않았던 것들을 지키는 선에서 돈을 잘 벌고 있어서 더 뿌듯한 것 같아요.” 하 작가는 자신을 소비해주시는 분들께 언제나 고맙다면서, 작가를 향한 응원의 소비보다는 독자 스스로의 위로나 치유를 위해 콘텐츠를 소비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누구나 창작자가 될 수 있는 시대다. 하루에도 셀 수 없는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는 지금, 하 작가는 자신만의 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원조 SNS 시인’으로 많은 관심을 받아왔기에 세상에 휘둘리지 않기 위한 다짐이다. 특히 그는 ‘초심은 잃어도 조심은 잃지 말자’라는 말을 되뇐다. 자신만의 철학을 가진 수많은 창작자들이 있기에 ‘잘난 척’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짧은 글을 쓰다 보면 조금 더 세게 쓰고 싶다는 유혹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글을 쓸 때 조금만 덜 세게 쓰자는 생각을 해요. 글자 수만 덜어내는 게 아니라 잘난 척을 덜어내는 거죠. 제가 잘나서, 제 철학이 남보다 뛰어나서 독자분들이 저를 소비해주시는 게 아니니까요.”

‘너인줄 알았는데 너라면 좋았을걸’ <금요일 같은데 목요일> 中
‘왜 나온거니 안 불렀는데’ <배> 中
‘고민하게 돼 우리 둘 사이’ <축의금> 中

위의 문장들은 하상욱 작가의 단편 시 중 일부다. 그의 글을 읽은 독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가 ‘문장을 읽는데 불편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글감을 찾는 특별한 방법 같은 건 없어요. 운이 좋아서 글감이 떠오를 수도 있지만 그건 아주 적은 확률이고요. 지독하게 고민해서 짜낼 수 밖에 없죠.”라고 말한다. 한때 그에게도 글이 폭발했던 시기가 있었다. 2015년에 발표한 그의 두 번째 시집 <시 읽는 밤 : 시 밤>을 냈을 때다. 그 후 2~3년 간 많은 글을 써 내려갔고, 그 글을 모아 세 번째 시집 <어설픈 위로 받기 : 시로>를 펴냈다. 하 작가는 그 시기에 글이 폭발할 수 있었던 건 자신을 피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창작의 경험이 쌓이면서 제가 쓴 글, 표현을 피해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게 참 힘들어요. 물론 지금은 나름의 노하우도 생겼지만, 제 글을 검열해야 한다는 게 늘 어려워요.” 오늘도 그는 자신만의 선을 지키며 글을 쓴다.

1. 하상욱 작가의 첫 시집 <서울 시> 중 1권.
2. 144편의 사랑시가 담긴 <시 읽는 밤 : 시 밤>.
3. 사람과 관계, 세상사를 주제로 한 시를 모은 <어설픈 위로받기 : 시로>.

난 할 수 있다, 안 할 수 있다!

하상욱 작가는 도박으로 삶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 그의 책 <시로>에 실린 ‘난 할 수 있다. 안 할 수 있다’라는 시다. “어렸을 때는 무언가를 하는 게 어려워요.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무언가를 안 하는 게 더 힘들더라고요. 앞으로의 삶을 위해서 하던 걸 안 한다는 건 엄청난 용기와 노력, 희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단도박을 결심하신 분들은 안 하기 어려운 것을 하기 위해 노력하시는 거니까 힘을 내셨으면 좋겠어요.” 그는 뭔가를 하지 않는 것도 인생에서 큰 성취라며, 누구나 해낼 수 없는 것을 시도한다는 자체만으로도 박수를 드리고 싶다고 전했다.
코로나19 이후로 모두의 삶이 변했다. 하 작가도 달라진 삶에 적응해 나가는 중이다. 자신만의 글을 쓰면서 비대면 혹은 소규모로 이뤄지는 강연, 라디오 및 방송 게스트 등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묵묵히 해나가고 있다. “지금은 모든 게 막연해요. 딱히 계획을 한 것도 없고요. 그저 지금은 변해버린 일상에 적응하는 게 제 삶의 모습 같아요.” ‘모두가 하는 생각’을 ‘모두가 하지 않는 표현’으로 정리하는 사람. 짧고 센스 있는 글을 보면 ‘하상욱 꺼 같다’라는 말에 다시 한 번 글의 매력에 빠져드는 사람. ‘시팔이’이자 ‘시잉여송라이터’ 하상욱의 새로운 글을 기다려본다.

"앞으로의 삶을 위해서 하던 걸 안 한다는 건
엄청난 용기와 노력, 희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