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그러운 여름의 한 낮

코로나19 이후 외출을 삼갔다는 제훈 씨 부부. 그들이 고심해 선택한 여행지는 춘천에 위치한 ‘제이드 가든’이다. 동화 속 풍경을 재현한다면 이런 모습일까? 입구부터 유럽의 성과 정원을 연상시키는 풍경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예전부터 와보고 싶었는데 정말 예뻐요! 곳곳이 포토존이네요.” 만족의 미소를 짓는 아내의 모습에 제훈 씨도 활짝 웃어 보인다.
올해로 개장 10주년을 맞이한 제이드 가든은 ‘숲 속에서 만나는 작은 유럽’을 콘셉트로 약 16만㎡의 부지에 총 26개의 테마 정원이 조성되어있다. 자연의 계곡 지형을 그대로 살려 꾸몄기에 힐링의 시간을 보내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다.
두 사람이 방문한 시간은 주말 낮이었지만,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 않아 여유롭게 산책을 즐길 수 있었다. 낙엽송 우드칩이 두껍게 깔린 길에서 크게 숨을 들이켜보고, 큰 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운 산책로를 천천히 걸어본다. 화이트 셔츠와 반바지, 원피스와 밀짚 모자로 커플룩을 연출한 두 사람에게 여름의 싱그러움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힘들었던 시간만큼 두 사람 사이에는 더욱 굳건한 믿음이 자리 잡았다.

도박은 고통을 해결해주지 않는다

마냥 행복해 보이는 두 사람에게도 굴곡진 세월이 있었다. 대기업 퇴직 후 의류사업을 시작한 제훈 씨는 말 그대로 성공가도를 달렸다. 작게 시작한 일이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성장하면서 많은 돈을 벌었다. 다른 사업에도 관심이 생겼고, 유흥주점 영업에 발을 들인다. 하지만 성공의 단 꿈도 잠시, 동종업계 사람에게 크게 사기를 당하면서 영업 3년 만에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경제적으로 많은 것을 잃고 나니 건강도 나빠지더군요. 신경을 많이 썼더니 중풍이 왔어요. 몸 오른쪽에 마비가 와서 걸을 수조차 없었죠.
이후 병원에서 1년을 보내고 기적적으로 몸을 회복했지만, 마음의 상처까지는 치료하지 못했다. 극심한 우울증을 겪었던 제훈 씨는 삶의 돌파구를 찾다가 카지노를 떠올렸다. 과거를 만회해야 한다는 생각에 게임으로 불로소득을 얻자고 마음 먹은 것이다. “그때는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 이해가 안되요.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찾을 수 있는 한 방을 노렸죠. 그게 제 목에 밧줄을 거는 짓인 줄도 모르고 말이에요."
그 길로 강원랜드를 찾아갔고, 운 좋게 첫 날부터 돈을 따기 시작했다. 다 잃어도 된다는 생각으로 걸었던 30만 원은 400만 원이 되었다. 한달 월급 정도의 돈을 한 번에 따고 나니 욕심이 났다. 또 강원랜드를 찾았고, 총 20일 동안 7연승을 거두며 3,000만 원의 거금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행운은 오래 가지 못했다. 8번 째 게임부터는 계속 패배가 이어졌다. 3,000만 원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후에는 각종 보험금과 연금을 쏟아부어 게임을 했고, 돈이 부족하면 아프다는 핑계를 대며 어머니께 돈을 받았다. 그렇게 3년 동안 5억 이상의 돈을 당겨 쓰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다.
단도박을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는 딸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게임할 돈을 마련하기 위해 딸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다. “약값을 해야 한다며 딸에게 500만 원을 받았어요. 그 돈을 가지고 카지노에 가서 신나게 게임을 했죠. 돈을 다 잃고 나서 가만히 생각을 해봤어요. 도둑도 자식에게는 도둑질을 하지 말라고 하는데, 전 자식에게 거짓말을 해서 게임할 돈을 받은 거예요. 죄책감이 들어서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죠.” 밤새 참회를 하던 제훈 씨는 도박을 끊기로 결심하고 클락을 찾아갔다. 영구정지를 한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그렇게 기쁘고 행복할 수가 없었다. 5년 간의 도박은 그렇게 끝이 났다.

“예전부터 와보고 싶었는데 정말 예뻐요! 곳곳이 포토존이네요.”

단도박을 유지하게 도와준 가족들의 믿음

가족들은 제훈 씨가 도박을 했었다는 사실을 단도박 이후에 알게 됐다. 제훈 씨의 아내는 그가 고백한 날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남편이 도박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이었어요. 전 열 손가락의 지문이 닳도록 열심히 일하며 살아왔는데, 남편은 자기 보험금과 연금도 모자라 어머니 돈까지 가져다 썼잖아요. 배신감에 치를 떨었죠. 이럴 거면 남편이 아파서 쓰러졌을 때 일어나지 말고 죽는 게 나았겠다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그때 아들이 제훈 씨에게 “아빠, 그럼 우울증 고친 거야?”라고 물었고, 그렇다고 대답하자 돈보다 사람 목숨이 중요하다며 그럼 됐다고 말했다. 제훈 씨는 다시는 카지노에 가지 않겠다고 굳게 약속했고, 가족들은 그 말을 믿기로 했다. 이후 제훈 씨는 강원랜드에서 진행된 가족 모임에 아내를 초대했다. 아내는 내키지 않았지만 할 수 없이 참석했다. “도박하는 사람에 대한 인식이 안 좋잖아요? 그래서 가족 모임에 참석하고 싶지 않았는데요. 그날 같은 테이블에 젊은 부부와 중학생 아들이 함께 앉았어요. 아빠가 도박으로 재산을 날린 가정이었는데, 아들이 아빠를 이해하면서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단도박자에 대한 시각이 달라졌어요. 클락에서 도박 중독자의 회복을 위해 애쓴다는 걸 피부로 느낀 순간이었죠.”

과거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

단도박 이후 제훈 씨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과거에는 TV에서 카지 노만 나와도 죄책감에 놀라기 일쑤였고, 주변 사람이 손가락질을 하는 것 같은 피해망상에 시달렸다. 이제는 다르다. 클락의 지원으로 바리스타, 제과제빵 자격증을 따고, 다양한 힐링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심신의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 게임의 승패로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없으니 가족과의 대화가 많아졌고, 가족의 행복을 위해 고민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한 달에 50만 원씩 아내에게 용돈을 받아요. 술, 담배도 다 끊고, 카지노에 가지 않으니 돈이 남더라고요. 가족 외식비도 내고, 손주 장난감도 사줄 수 있어 행복합니다.”
제훈 씨는 자신처럼 단도박을 결심하는 이들에게 한 가지 메시지를 전했다. 도박을 했던 과거를 절대 잊지 말라는 것. “보통 나쁜 과거는 빨리 잊어버리려고 하지만, 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돈으로 인해 자신이 비참했던 순간을 기억해야 카지노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 있어요. 처음엔 돈을 땄어도, 나중에는 무조건 잃는다는 사실을 잊지말고 계속 상기시켜야 합니다.” 남은 삶은 가족을 위해, 그리고 이웃을 위해 봉사하며 살고 싶다는 제훈 씨와 그의 아내. 서로를 보듬으며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그들의 앞날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