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인식시킬 충격요법 필요

국내에서 도박중독치료를 처음으로 시도한 치유전문가는 도박장애자와 그 가족들에게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도박을 왜 그만두려고 합니까?”, “같이 도박을 해 보시지요?”라거나, “지금까지 이혼하지 않고 어떻게 함께 살아오셨어요?”라는 등 염장 지르는 식의 ‘역설 지향적’접근 방법으로 그들을 대했다고 한다. 또 어느 상담사는 몰래 도박하다 진 빚을 갚아준 부모나 아내가 찾아오면, “감옥에 가도록 놔두셨어야 합니다”, “빈털터리가 되기 전엔 도박 못 끊습니다”라고 기가 차는 말로 상담한다. 좋은 말로 해서는 도대체 통하지 않으니 그런 충격요법을 쓰는 것이다.
도박중독은 감기처럼 바이러스에 의해 전염되는 병이 아닌 마음의 병이다. 정신을 도박중독 이전 상태로 되돌리는 회복은 의사의 처방전과 며칠 분의 약으로 원상복구될 수는 없다. 중독에 이르기까지 중독자 자신의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가족이나 동료, 친구들로부터는 신뢰를 잃었으며, 사회적으로는 ‘중독자’라는 낙인이 찍혔을 수 있다. 중독 이전의 상태로 되돌릴 수 없는 것이 도박중독이 다른 질병과 다른 점이기도 하다.
도박중독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협심자(協心者)’라고 한다. 국어사전에서 ‘협심’은 ‘여럿이 마음을 하나로 모음’이라는 뜻으로 설명되어 있다. 본인도 노력하니 주변 사람들도 함께 마음을 모아달라는 간절한 요망이 담긴 단어로 태어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중독자 스스로 다시 태어난다는 단단한 각오가 필요하다. 몸은 멀쩡하지만, 정신 상태와 행동거지는 옛날의 그가 아니다.
도박중독의 가장 큰 위험요인은 ‘도박에 대한 접근성’이다. 주변에 도박 시설이 있거나, 도박을 하는 사람이 있거나, 언제나 할 수 있는 상태가 가장 큰 문제라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이다. 중독을 끊기 위해서는 우선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려면 문명의 이기가 작동하지 않는 무인도에 고립시키면 되겠지만, 요즈음은 그런 곳도 없고 또 사람이 그렇게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무엇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래서 협심이 요구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 가까운 가족의 협심이다. 도박중독은 ‘가족질병’이므로 함께 치유하여야 한다. 질병에 대한 정확한 이해의 바탕 위에서 함께 상담을 받고 대처해야 한다. 금전 지출은 누가 어떻게 할 것인지, 필수적인 개인 생활 외에 무엇으로 시간을 보낼지, 개인적, 사회적 곤경은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모두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해결해야 할 것들이다.
또 한 가지 협심의 대표적 사례가 익명의 도박자 모임(Gamblers Anonymous)이다. 도박으로 고통받는 분들의 자조 모임으로, 서로의 어려움을 공유하고 격려하면서 회복 노력을 함께 기울이고 있다. 특히 회복과정에서 재발했을 때의 대처 경험들은 타산지석이 되고 있으며, 회복 노력을 계속하도록 이끄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즉 평생의 업인 회복 노력의 ‘동반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신종도박에 대한 대응 서둘러야

다음은 국가사회의 협심이다. 한국은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서방국가보다 도박중독자 문제에 대한 문제 인식과 대책이 늦게 시작됐다. 역설적으로 그들 국가에서의 치유, 성공, 실패 사례들을 정책에 반영할 수 있게 되었다. 제도적으로는 그들 국가보다는 더 현실적인 대책들이 시행되고 있다. 무료 진료나 전문치유기관 간의 연계, 도박장애자들의 다양한 활동 지원, 재정•법률•보건기관 간의 생활 지원 등은 다른 국가보다는 더 체계화되어 있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가진 황금만능의 사회풍토다. 기술발전에 따라 다른 나라의 도박업체를 이용한 원격도박, 가상화폐를 이용한 도박, 도박을 부추기는 팝에서의 연습 도박, 게임 아이템, 유사 외환거래, 소셜 미디어에서의 도박광고 등 돈이 되는 곳에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덤벼들고 있다. 경찰이 있어도 범죄를 예방하지 못하듯이 이런 상황들을 국가의 공권력이 모두 차단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일부 국민들이 협심하지 않아 안타까울 뿐이다.
도박중독은 정신질환이므로 중독자가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도록 평생동안 은인자중(隱忍自重,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참고 감추어 몸가짐을 신중히 함)하여야 한다. 곤경에 처한 중독자가 옆길로 새지 않도록 가족과 사회와 국가가 협심하는 것만이 고통을 줄이고 새로운 중독자를 탄생시키지 않는 길이다. 협심이 도박중독의 폐해를 줄이는 길이고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