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목표, 달라진 삶에 충실하며
잘 나가는 회사의 대표, 한 가정의 가장. 현수 씨도 한 때 그런 시절이 있었다. 승승장구하던 회사는 IMF를 만나 한 순간에 쓰러졌고, 새로 시작한 사업도 지지부진했다. 채권자와의 문제까지 불거지자 이혼도 현실이 됐다. 삶의 희망도, 도시에서 살아가는 의미도 모두 사라졌을 때, 그의 머릿속에 강원도 사북이 떠올랐다. 과거 카지노에서 느꼈던 즐거움이 모든 근심과 걱정을 잊게 해줄 것 같았다. 그 길로 현수 씨는 작은 서류 가방 하나만 든 채로 사북으로 내려왔다. 그는 사북에서 남은 여생을 살리라 다짐했고, 그 후 포커, 바카라 등 게임에 몰두하며 시간을 보냈다.
현수 씨는 게임을 잘하기 위해 나름 연구도 하고, 자신감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카지노 게임에서 이길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게임을 하다 보면 욕심이 생겨 판돈을 올릴 수밖에 없고, 결국엔 패배하게 된다. 그는 도박의 경우의 수는 결국 똑같은 확률로 가는 것이기에 이길 수 없는 게임이라고 판단했다. 도박으로 인해 이웃이 자살한 것도 그가 도박에 대해 회의를 느끼는 계기가 됐다.
사회와의 모든 연을 끊은 지 10여 년, 도시로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는 사북에서 제대로 자리 잡기 위해 택시운전을 택했다. 그리고 카지노 파장 이후 택시를 이용하는 승객들을 만나고, 제3자의 입장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도박의 민낯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었다. 진심으로 도박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 사이 새로운 목표도 생겼다. 이전에는 오로지 자신만 생각했지만, 택시 회사에서 파업과 복직을 경험하며 주변 사람들의 삶을 돌아보게 됐다. 함께 일해온 택시기사들, 지역 주민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때 ‘극단 광부댁’을 만났다. 우연히 극단원 2명과 지역 아카데미 강좌를 함께 들으며 친분을 쌓았고, 석탄 문화제에서 지역주민들로 구성된 극단 광부댁의 연극 <탄광촌 아라리오>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얼마 후 정선군 도시재생센터가 들어서면서 주민 기자, 도시재생활동가로 일하게 됐다. 극단이 더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지역신문 창간호에 극단 광부댁을 소개하는 기사를 실었고, 이후 극단 광부댁에 정식으로 합류했다. 외지인인 자신을 믿고 극단 관리를 맡긴 단원들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도박과는 완전히 결별한 삶을 살기 위해 그 동안 미뤘던 카지노 영구정지를 신청했고, 상담을 받으면서 클락을 알게 된다.
현수 씨는 지역주민들로 구성된 순수 아마추어인 극단의 수준을 향상시키고, 제대로 된 지역극단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이때 클락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클락에서 제공하는 협동조합 운영 교육을 들으며 극단의 미래를 준비했고, 그 결과 극단 광부댁은 예비 사회적기업‘문화창작소 광부댁 협동조합’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그리고 클락의 음악치유 프로그램인 클락밴드에서 색소폰을 배우면서 정서적으로 안정을 얻었고, 제2의 인생을 더욱 윤택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됐다.
현수 씨의 삶도 새로운 궤도에 올랐다. 그의 목표는 분명하다. 탄광문화촌이 완공되는 2022년 10월, 그곳에 문을 여는 극장에 극단 광부댁이 상주 단체로 공연하는 것, 그리고 새 삶의 터전인 사북이 ‘도박 도시’가 아닌 ‘문화 도시’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문화의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올해에도 강원랜드 카사 시네마에 다시 연극을 올리기 위한 그의 노력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