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는 도박, 비트코인은 투자?
박하라 씨는 대학 시절 떠난 여행에서 한 번 필리핀 카지노를 방문했다가 하룻밤에 800만 원을 땄다. 땄을 때는 몹시 기뻤지만 친구들에게 술을 사고 유흥에 탕진하니 몇 일만에 다 써버렸다. 박하라 씨는 어렸을 적부터 모아둔 세뱃돈을 털어 강원랜드에 가보았으나 하루 만에 몇 십 만원을 잃고 말았다. 필리핀에 봉사활동을 간다고 거짓말을 해서 부모님께 비행기 값을 지원받고, 대출받은 돈을 다 날렸다. 박하라 씨는 높은 이자에 시달리다가 대부업체와의 통화를 들켰고, 아버지에게 쫓겨났다. 일주일쯤 불같이 화를 내던 박하라 씨의 부모님들은 빚을 모두 갚아주었다. 그리고 다시는 도박을 하지 않기로 각서를 썼다.
박하라 씨는 도박과 영영 이별하나 싶었다. 대학 졸업 후 취직을 못한 박하라 씨는 공무원 준비를 하기로 했다. 하루 10시간씩 공부를 하던 박하라 씨는 친구가 가상화폐로 돈을 벌어서 외제차를 샀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야, 코인 그거 도박 아니야?”
“가상화폐는 미래의 자산이지, 이게 어째서 도박이냐?"
박하라 씨는 가상화폐가 무엇인지 잘 몰랐지만 애플리케이션을 깔고 대표적인 코인을 조금 사 보았다. 하루 만에 7%나 상승하는 것을 보면서 어려운 현실에서 자산에 투자를 했고, 부모님께 빚도 갚으리라 결심했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봤자 그 월급으로 대도시에 집 한 채 사기도 어려운 현실 아닌가. 들뜬 박하라 씨는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서 투자했다. 부모님이 암에 걸려서 병원비가 필요하다는 거짓말과 함께! 박하라 씨가 투자한 신생 코인은, 하루 만에 50%가 급등했다. 박하라 씨는 더 투자할 걸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뜯지 않은 문제집과 엄마의 목걸이를 감자마켓에 팔았다. 그러나 일주일 후, 다시 80%가 떨어지면서 박하라 씨는 돈을 모두 잃고 말았다.
‘역시 사람이 잘 하던 것을 해야 돼. 코로나로 필리핀도 갈 수 없으니 온라인으로라도 바카라를 다시 해볼까?’ 왠지 결의에 찬 박하라 씨였다.
도박은 점점 도박이 아닌 척 한다
앞으로 박하라 씨는 어떻게 될까? 지난호에서 우리가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조절할 수 없고, 그것때문에 거짓말을 하고 빚을 지게 된다면 도박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비트코인과 같은 새로운 매체는 대놓고 ‘내가 도박이다’ 하지 않는다. 온라인 게임도 점점 도박성이 심해지고 있다. 처음에는 랜덤박스와 같이 기대하지 않았던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정도이다. 일단 그 미끼를 물면 그 다음을 기대하게 된다. 자발적으로 결제하는 현금의 액수는 점점 커진다.
그래서 더 무섭다. 주식과 달리 개장과 폐장 시간이 없어서 수면의 질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크다. 주식을 하는 사람들은 속상해서 잠을 못 자지만, 코인하는 사람들은 잠을 안 잔다. 주식 시장의 나쁜 점은 빼닮았다. 파생상품을 통해 확률에 투자해 기존의 투자자들보다 더 많은 이득, 더 많은 손해를 볼 수 있는 레벨 높은 게임이 마련되어 있다. 파생상품은 가치가 아니고 확률에 투자하는 것이다. 더 이상 도박은 음침한 하우스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안전한 우리집에서 애플리케이션이나 화면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가상화폐는 미래의 주요 자산이 될 수도 있으며, 게임 역시 건전하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누군가에게는 도박이 될 수 있는 것이 분명하다. ‘가상화폐’라는 명칭으로 인해서 박하라 씨와 같은 사람이 투자라고 착각하고, 도박의 방식으로 접근하기 쉽다. 뇌 속에서는 도박이 아니라 투자라는 합리화가 일어난다.
젊은 세대의 도박이 늘었다. 언택트(Untact) 문화에서 도박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대출도 비대면으로 받을 수 있고, 도박도 비대면으로 할 수 있다. 재발의 징후를 다른 사람들이 알아내기도 어렵다. 병원에 온 뒤에도 투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들이 중독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또 다른 중독의 대상이 나타난다.
4차 산업시대의 정교한 게임이나 새로운 금융수단인 암호화폐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도박이다. 암호화폐가 무엇인지 완전히 이해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 대상이 무엇이든, 앞으로 어떻게 진화한 도박이 등장하든, 우리는 간단한 세 가지 질문에만 제대로 답하면 된다. ‘재미가 주된 목적인가? 이것 때문에 거짓말을 하는가? 투입되는 시간과 돈을 계획대로 조절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