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존감은 어느 정도일까?

우선 저는 도박 중독에 빠졌던 ‘과거’라는 선생님의 이야기에서 희망을 봅니다! 도박 중독만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중독들은 언제든 재발될 위험을 갖고 있는, 일종의 불발탄으로 보거든요. 말씀하신 대로 과거의 기억으로 도박 중독을 떠올릴 수 있는 상황이라면 정말이지 반가운 이야기입니다.
이 정도의 설명에서 ‘아, 과거형으로 생각할 수 있다면 좋은 거구나!’라고 생각하신다면 선생님의 자존감은 그다지 걱정스러운 상황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뭐야, 과거로 생각하는 게 위험하다는 거야? 단도박 했다는 걸 못 믿겠다는 이야기야? 내가 그 정도로 밖에는 안보인다는 건가?’로 넘어간다면, 낮은 자존감으로 인한 피해의식이 상당히 드러나는 장면이기에 걱정이 훅 들어오는 상황이 됩니다.
자존감은 자기 가치에 대한 포괄적 평가나 판단을 말합니다. 이를테면 “나 정도면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야.” 같은 생각이지요. 이에 더해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가능성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날 좋아할 거야.” 같은 말이 여기에 해당되겠지요.
자존감을 평가하는 질문에는 아래와 같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제일 흔하게 사용되는 척도는 ‘로젠버그 자아존중감 척도’입니다. 총 10개의 문항으로 구성되어 있고 한 문항 당 4점이 최고점인데, 점수가 높으면 높을수록 자존감이 높다는 뜻입니다. 나는 자존감이 어느 정도 되는 사람인지, 한 번 점검해 보고 계속 가보면 어떨까요?

모든 일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해요

30점 이상이면 자존감이 높다고 보고, 20점 이상이면 보통, 19점 이하면 낮음으로 분류합니다. 참고로 우리나라 대학생 집단의 평균 점수는 29.1점이라는 보고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점수는 어떠신가요? 아마도 생각보다 높게 나왔네 하실 분도 있고, 이게 뭐야 싶은 분도 있을 겁니다. 자, 여기서 아까 처음에 하신 질문으로 돌아가 볼까요? 저는 뒷부분에서도 선생님 안에 있는 희망을 보네요! 도박 중독 이야기로 쉽게 상처를 받는다고 하셨는데요. 상처를 받는다, 그러니까 나는 문제다 이런 결론으로 가버리지 않은 것이 감사하네요.
살다 보면 우리들은 다양한 종류의 나쁜 일들을 만나게 됩니다. 낙관적인 사람도 그렇고, 비관적인 사람도 그렇죠. 차이가 나는 건 그분들의 반응입니다. 낙관적인 사람은 나쁜 일을 외부적, 일시적, 특수한 원인으로 설명합니다. 비관적인 사람은 이와 반대로 내부적, 영속적, 보편적 원인으로 설명합니다
다른 사람의 말은 외부적 요인이죠. “내가 상처를 받네,” 이건 내부를 바라보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그 다음에 이어지는 것이 중요하지요. 상처를 극복하고 자존감을 지키는 것이란 말 속에는 “너의 비난(외부적)이 나는 뼈아프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야(특수적). 계속 그럴 것도 아니야(일시적).” 라는 이야기가 들어있습니다. 비관적 버전의 이야기를 들어보시겠어요? “그래, 난 역시 안돼(내부적). 지금까지 항상 그랬어(영속적). 나는 잘하는 게 하나도 없다고(보편적).”

과거는 인정하고, 내가 나의 편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는 질문에 대한 답을 드리려고 합니다. 자존감을 지키는 방법을 물으셨지요. 이를 위해서는 자존감이 고정되어 있는 가치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위에 기록해둔 질문들을 찬찬히 읽어보세요.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게 느낀다” 하는 것이지, 실제 나의 가치와 자존감은 아무런 상관도 없습니다. 이론적으로만 이야기하자면 정말 엉망인데 자존감이 높은 사람도 있을 수도 있고, 누가 봐도 괜찮은데 자존감이 낮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거죠.
이게 중요한 것은, 실제로 우리 가치를 높이거나 낮추는 것보다 내가 나의 가치를 보는 시각을 바꾸는 게 훨씬 수월하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나를 별로라고 할 수 있어요. 과거 시제로 접어버리고 싶은 옛 이야기로 상처를 줄 수도 있죠. 그렇지만 그게 실제의 나는 아닙니다. 그 사람이 보고 있는 나의 모습은 한 부분이 맞아요. 그러니 아니라고 아득바득 우겨봤자 더 우스운 꼴이 되기 쉬우니 그렇게 하지는 마시고요. 흔히 저희가 ‘인정하기’ 기법이라고 이야기하는, 그 사람 이야기 속의 진실의 한 토막을 받아들이는 시도를 하는 게 그들의 공격(물론 그들은 공격하려고 공격하는 게 아닐 수도 있지만요)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방법입니다. “그래, 내가 당신 말대로 ‘과거에’ 그렇게 바보 같이 행동한건 사실이기는 하지. 그래도...” 네, 앞부분에서 인정하는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은 아마 깜짝 놀랄 겁니다. 충분히 강한 사람만 자신의 연약한 부분을 받아들일 수 있거든요. 그만큼 내가 더 강해졌기때문에 인정한다는 걸 아는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리고 끝 부분에 ‘그래도’를 붙이는 걸 잊지 마세요. “내가 실수를 많이 했지, 그래도 지금은 달라지려고 노력하잖아.”, “내가 그렇게 살기는 했지, 그래도 요새는 그때와 달라.” 칭찬을 쭉 하다가 끝에 가서 ‘그래도’를 붙이면 안 되겠지만, 지금처럼 아픈 이야기를 들을 때, 특히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에는 ‘그래도’를 빠뜨려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내 속의 나는 상대방의 이야기 못지않게 내가 하는 이야기를 다 듣고 있거든요. 끝에 가서 ‘그래도’를 붙이면서 내 편을 들어주는 것만큼 내 자존감을 키워주는 것이 없습니다. 상처 입고 펄펄 뛰는 모습이야말로 “나 아직 엄청 멀었다고!” 하는 걸 그대로 보여주는 것임을 기억하면서, 오늘 나는 내 편을 한 번이라도 들어주자 결심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