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엔 카피라이터, 낮엔 교수, 저녁엔 작가

송파구 문정동의 한 카페, 한 남자가 걸어 들어온다. 이제 기말고사만 남겨뒀다며 편안한 얼굴로 웃어 보이는 그, 카피라이터 정철 대표다. ‘사람이 먼저다’, ‘나라를 나라답게’, ‘코로나는 코리아를 이길 수 없습니다’ 등 우리가 한 번쯤 들어봤던 걸출한 카피들을 그가 만들었다.
그는 자신을 ‘아침엔 카피라이터, 낮엔 교수, 저녁엔 작가’라고 소개했다. “카피라이터로 20년 이상 일하다 보니 여러 길이 열렸어요. 커리어를 꾸준히 쌓은 만큼 강의 요청이 많아 대학 강단에 서게 됐죠. 또 카피라이터로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나니 어느 순간 나의 이야기가 ‘마렵다’고 느꼈어요. 우리 삶에 대한 이야기를 카피 형식으로 풀어보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책 <내 머리 사용법>은 50쇄를 기록하며 ‘초대박’ 났고, 작가라는 직업에도 자신감이 생겼다
카피라이터로 살아온 시간이 인생 일모작이었다면, 작가로서 삶이 인생 이모작이 될 거라 예감한 정철 대표. 이후 <카피책>, <틈만 나면 딴 생각>, <사람사전> 등 매년 1권의 책을 선보이며 그만의 이야기를 써내려 가고 있다.

인생을 바꾼 일곱 글자

어린 시절, 공부를 잘했던 정철 대표는 중학교 3학년 때 서울로 전학했다. 새로운 학교에 적응하는 건 쉽지 않았고, 반에서 겨우 겨우 상위권을 유지했다. 자존감이 바닥을 쳤던 순간,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이 바로 글이었다. 교내 백일장에 낸 시가 장원을 차지하면서 학교 생활에 재미를 붙였다. 대학은 아버지의 권유로 경제학과로 진학했다. 하지만 수학에 소질이 없어 인문대 수업을 들으며 시간을 보냈고, 어느 순간 ‘소설을 써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렇게 하숙집에 틀어박혀 썼던 첫 단편으로 고대 문학상을 받았다.
자신의 글에 대한 확신은 섰지만, 글로 밥벌이를 하기에는 어려운 시절이었다. 일반 기업 취업 준비를 하던 어느 날, 정경대학 사무실을 나오면서 우연히 쳐다본 오른쪽 벽에 그의 인생을 바꾼 일곱 글자가 적혀있었다. ‘카피라이터 추천’. 특히 ‘라이터’라는 글자가 그를 강하게 끌어당겼다. “그때 제가 왼쪽 벽을 봤다면, 제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카피라이터가 된 게 우연만은 아닌 거 같아요. 계속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고, 나름 꾸준히 써왔기 때문에 그 일곱 글자가 제 눈에 띈 거 아닐까요?”

'좋은' 글쓰기에 대해

우리는 ‘텍스트의 시대’에 살고 있다. 과거에는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 명함이나 외모, 말투 등으로 판단했다면 이제는 한 사람이 쓴 글이 곧 그 사람인 시대다. 온라인 소통이 강화되면서 모든 것을 글로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좋은 글에 대한 고민이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정철 대표는 글을 쓰는 이유가 다른 사람에게 읽히기 위함이라며 의미와 재미, 둘 중 하나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에 재미가 없다면 읽히지 않을 뿐더러 굉장히 건조하고, 사람의 마음을 건드릴 수도 없죠. 글을 쓸 때 최대한 재미를 꽉 붙들고, 그 안에 의미를 넣을 수 있다면 아주 좋은 글이 될겁니다.”
흔히 ‘글을 쓴다’고 하면 떠오르는 생각을 글로 정리해 표현하는 것이라 정의한다. 하지만 정철 대표는 ‘떠오르는 생각’이라는 말 자체가 틀렸다고 말한다. 떠오르는 생각을 글로 쓴다는 건 평생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 기적이라는 것. “생각은 떠오르는 게 아니라 찾는 거예요. 나만의 현미경이나 돋보기를 들고 꾸준히 찾아다녀야 어쩌다 하나씩 발견하게 되요. 그렇게 발견한 생각들을 확장하면 카피가 되고, 글이 됩니다.”
그렇다면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어온 그의 카피와 글은 어떻게 탄생한 걸까? 그는 글쓰기를 ‘단순 노동’이라고 표현한다. “백조를 보면 한없이 우아해 보이는데, 실상은 물에 떠 있기 위해 꾸준히 물장구를 치잖아요? 남들과 다른 문장을 만들기 위해 열 번이든, 백 번이든 단어를 붙였다 떼어내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그렇게 발버둥을 쳐야 후회하지 않는 글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어요.” 글에 있어서는 베테랑인 그가 지금도 3~4줄 분량의 짧은 글을 평균 30~40번 고치는 노동을 기꺼이 감내하는 이유다.

“누군가를 이기고, 쓰러뜨려야 인정받는 업계에서 치열하게 살아왔는데,
그동안 잊고 있던 ‘사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죠.”

글, 그속에 사람을 생각하다

카피라이터가 된 후, 20년 간 수많은 광고 카피를 선보이며 승승장구한 정철 대표는 어느 날 낯선 감정에 사로잡혔다. 소위 ‘잘난 맛’으로 살았던 그에게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라는 의문이 생긴 것이다.“故 노무현 대통령이 연설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 삶의 방향이 많이 바뀌었어요. 누군가를 이기고, 쓰러뜨려야 인정받는 업계에서 치열하게 살아왔는데, 그동안 잊고 있던 ‘사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죠.” 그날부터 그의 글, 그의 삶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혼란을 겪었던 지난해 초, 정철 대표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뭐든 하고 싶었다. 그의 선택은 하나, 질병관리본부를 응원하는 캠페인을 하는 것이었다. 바이러스와 맞서 싸워 이기려면 첫째도 자신감, 둘째도 자신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시작한 혼자만의 캠페인 카피, 바로 ‘코로나는 코리아를 이길 수 없습니다’였다. 정부가 내세운 슬로건도, 유명한 제품의 광고 카피도 아니었지만 예상과 다르게 반응은 뜨거웠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카피에 동의하며 캠페인을 공유했고, 캠페인을 시작한 지 1년이 지난 후에는 코로나 백신 수송 차량에도 그의 카피가 붙었다. 돈을 받고 한 일이 아니었다. 그저 공동체를 향한 그의 진심이었다.
의미 없이 단어만 나열한 글은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분명한 메시지를 담은 글, 진심을 녹여낸 글은 우리 마음 속에 남아 조용히 불꽃을 피운다. 정철 대표는 그런 카피, 그런 글을 쓰기 위해 늘 세 마디를 곱씹는다. 바로 ‘다르게, 낯설게, 나답게’. 이 세 마디는 지금도 그의 인생에서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다.

행복에 대한 새로운 정의

인생의 절반 이상을 글과 함께 한 정철 대표. 그가 꾸준히 연필을 들 수 있었던 원동력은 ‘행복’이다. 다만 그가 생각하는 행복은 조금 다르다. 그가 참여한 광고가 상을 받거나, 제품이 잘 팔려 광고주의 감사 인사를 받는 일,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독자들이 사인 요청을 하는 것. 그는 이런 순간들을 행복 대신 영광으로 분류한다. “자신이 만든 행복과 타인이 준 영광을 구분할 필요가 있어요. 영광만 쫓아가다 보면 스스로가 진짜 행복한 지 알지 못한 채 삶이 흘러갈 거예요. 제 행복은 카피나 글을 쓸 때, 책상 앞에서 오래도록 고민을 하다가 ‘이거다!’ 하는 문장을 발견하는 순간이에요.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두 번은 그런 경험을 하는데, 엄청난 희열을 느껴요. 그 찰나의 순간이 지금의 저를 있게 했죠. 삶의 방식은 모두 달라도 누구나 그런 희열을 느끼는 순간이 있을거라 생각해요. 자신이 만든 그 행복을 기억하세요.”
정철 대표는 지난 6월 말에 출간된 신간 <누구나 카피라이터>로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5년 전 나왔던 <카피책>이 카피를 어떻게 쓰는 지에 대한 안내서라면, <누구나 카피라이터>는 카피라이터의 업무 과정, 생각하는 방식 등을 프로젝트별로 설명한다. 한 줄의 카피에서 그치지 않고 생각의 공장이 돌아가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이 쓴 인생 글로 꼽는 짧은 에세이를 전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제목은 ‘인생’, 내용은 단 두 줄이다. ‘친구가 있으세요? 그럼 됐습니다’. “당신의 옆에 사람이 있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았다는 의미입니다. 어렵고 힘들 때, 곁에 단 한 사람이라도 머문다면 잘 살고 있는 거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생각이 마르지 않는 한 계속 글을 쓰고 싶다는 정철 대표. 그의 또 다른 사람 이야기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