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으로 맺어진 특별한 인연
여정 씨와 미연 씨가 서로를 알게 된 건 이제 2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친분을 쌓아온 그들이 첫 동반여행을 떠났다. 의상실을 운영한 경험이 있던 두 사람은 패션을 공통분모로 금세 친해졌다고 한다. 핑크 코트, 옐로 트렌치 코트로 멋을 낸 두 사람이 추암해수욕장에 도착했다. 강원도 동해시 북평동에 위치한 추암해수욕장은 해안절벽과 동굴, 촛대바위 등 크고 작은 기암괴석이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150m의 백사장 주변으로 각종 편의시설도 구비되어 있어 휴식을 즐기기에 제격이다.
“언니, 이리 와봐~ 이 모자 한 번 써볼래?”
기념품 가게를 살펴보던 미연 씨가 여정 씨의 손을 잡아 끈다. 여러 모자를 써보던 두 사람은 마지막에 똑같은 모양의 밀짚모자를 골랐다. 미연 씨가 사준 모자를 쓰고 한 바퀴 돌아보며 웃음 짓는 여정 씨. 그렇게 두 사람은 커플 모자를 쓴 채 백사장으로 향했다.
“이런 세상이 다 있구나 하고 신기해하다가
어느 순간 도박에 빠져든 저를 발견했죠”
도박 중독에서 단도박까지
한적한 백사장에서 두 손을 꼭 잡고 산책을 즐기던 미연 씨와 여정 씨는 도박으로 울고 웃던 시절을 떠올렸다. 이제는 지나간 일들이기에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지금도 그 시절을 떠올리면 ‘도대체 왜 그랬을까?’라는 의문이 먼저 든다.
“돈을 한참 잘 벌던 시절에 강원랜드에 다니던 사람에게 돈을 빌려줬었어요. 어떤 곳이길래 그렇게 열심히 다니는 건지 궁금했었는데, 지인이 한 번 가보자고 해서 방문했죠. 정말 깜짝 놀랐어요. 정말 화려하고 멋있는 거예요. 이런 세상이 다 있구나 하고 신기해하다가 어느 순간 도박에 빠져든 저를 발견했죠.”
그렇게 미연 씨의 20년이 쏜살같이 흘러갔다. 돈도 잃고 집도 잃고, 거짓말을 하고 돈을 빌리는 일상이 반복됐다. 하루는 아들에게 300만 원을 빌려달라고 연락했다가 거절당하고, 부모의 도리를 못한 것 같아 미안했던 미연 씨는 아들의 연락을 피했다. 결국 아들의 실종신고로 강원랜드에 형사들이 찾아오기도 했다. 이후 강원랜드에서 출입정지를 권했고, 기간도 모른 채 수락했던 미연 씨는 3년 동안 출입을 할 수 없게 됐다. 갑작스런 출입정지로 하늘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그때 자신이 도박 중독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미연 씨가 도박 중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건 KLACC 상담 선생님 덕분이다. 모두가 억지로 도박을 못하게 말리기만 했다면, 상담 선생님은 도박을 하는 미연 씨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안부를 묻는 등 꾸준한 관심을 보였다. 솔직하게 자신을 대하고 바라봐주는 존재에 고마움을 느낀 미연 씨는 단도박 여성모임에도 꾸준히 참가하며 영구정지를 하게 됐다.
여정 씨도 호기심에 처음 강원랜드에 왔다가 꾸준히 게임을 하게 됐다. 가진 돈을 다 잃었을 때, 그녀는 도박에 필요한 돈을 구하기 위해 지인에게 도움을 청하는 대신 돈을 모으겠다는 목표 하나로 열심히 일했다. 배추, 무, 수박, 오이 수확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면서 돈을 벌었고, 어느새 통장에는 2,000만 원이 넘는 돈이 모였다. 하지만 그 길로 다시 카지노로 향했고, 3일 만에 모은 돈을 전부 날렸다.
“돈을 잃을 때는 “내가 정신이 나갔구나”하고 다시는 안 간다고 다짐하죠. 그런데 그 결심이 오래 가지 않더라고요. 예전부터 돈을 잘 모으는 성격이라, 죽도록 일해서 돈을 모았어요. 카지노에 가겠다고 그런 거예요. 심지어 밤새 일해서 허리가 너무 아팠을 때도 밭을 기어다니면서까지 돈을 벌었다니까요. 지금 생각하면 참 기가 막히죠.”
여정 씨를 도박의 수렁으로부터 끌어낸 건 아들이었다. 엄마가 도박을 하는지 몰랐던 아들이 심각성을 깨닫고 출입정지를 하면서 단도박의 길로 가게 됐다. 당시에는 아들을 원망했지만, 그 선택이 아니었다면 여정 씨는 여전히 카지노에 앉아 있을지도 모른다. 아들 덕에 모든 재산을 날리지 않고 지켜낼 수 있었고, 영구정지를 하고 단도박 여성모임에 참여하는 등 변화된 삶을 살고 있다.
오래도록 우정을 이어가길
다짐하는 두 사람
“이제는 돈을 조금 벌어도 행복해요.
제 삶에 이런 기회가 왔다는 게
정말 감사한 나날이에요”
새로운 삶의 2막을 기대하며
이제 두 사람은 새로운 출발선에 서 있다. KLACC의 지원 아래, 다양한 자격증을 취득하며 새로운 꿈을 키워가고 있는 것이다.
미연 씨는 “숲 해설가 자격증을 따고 나니 세상이 다르게 보여요. 예전에는 나무를 봐도 아무런 감흥도 없었는데, 이제는 나무 하나하나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지 알기 때문이죠. 카지노에 다닐 때는 “게임하면 돈을 쉽게 딸 수 있는데 일을 해서 뭐하겠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하지만 이제는 60대 후반의 나이에도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라며 일하는 즐거움을 느끼면서 삶에 대한 만족도도 더욱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여정 씨는 바리스타 자격증, 꽃차 자격증에 이어 제과제빵 자격증에 도전하고 있다.
“도박을 할 때는 항상 쫓기는 거 같고, 불안했어요. 돈을 힘들게 벌어도 보람도, 여유도 없었죠. 이제는 돈을 조금 벌어도 행복해요. KLACC을 통해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났고요. 제 삶에 이런 기회가 왔다는 게 정말 감사한 나날이에요.”
추암해수욕장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추암출렁다리로 올라간 두 사람은 멋진 경치를 배경으로 서로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본다. 살아 있는 동안 건강하게 함께 하자고 다짐하며 미소 짓는 여정 씨와 미연 씨.
두 사람 앞에 펼쳐질 인생 2막을 응원한다.
여정 씨와 미연 씨는 두 손을 꼭 잡고 백사장을 걸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