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없는 도전 그리고 성장
남산옛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길 끝자락에서 검은 벽돌집을 마주 한다. 2층 양옥집을 리모델링한 ㈜요리인류의 쿠킹스튜디오다. 다양한 조리도구와 식재료, 아일랜드가 보이는 풍경이 검은 벽돌집과 꽤 잘 어 울린다. KBS의 사내 벤처 ㈜요리인류의 대표이자 약 25년 간 다큐멘터 리를 제작한 이욱정 PD는 그 동안 요리를 통해 세상을 보는 ‘푸드멘터 리(푸드+다큐멘터리)’에 집중해왔다.
“PD라는 직업 자체가 도전의 연속이었어요. 도전은 낯설고 가보지 않 은 영역으로 발을 내딛는 건데, 매주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야 했으니까요. 그래도 제가 도전을 즐기는 타입이라 두렵진 않았죠.”
그는 혼자 생각하고 상상한 것들을 실행에 옮겼으며, 그 과정을 즐겼 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 전에는 실패보다 도전에 성공하는 순간을 생 각하며 마음을 다잡았고, 실제로 수많은 문제들은 직접 부딪혔을 때 해 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인사이트 아시아 – 누들로드>(이하 누 들로드)를 기획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에는 음식을 주제로 한 프로 그램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우리에게 너무나 일상적이고 소박한 음 식인 ‘국수’를 주제로 ‘동서문명’이라는 포괄적인 주제를 다룬다는 것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게다가 다큐멘터리에서 시도하지 않았던 프리젠터 를 등장시킨 것도 모자라 그 프리젠터가 외국인이라는 것은 충격 그 자 체였다. 그렇게 탄생한 <누들로드>는 작은 국수 한 그릇에 인류의 역사 를 제대로 담아내면서 평단의 인정을 받는 수작으로 남았다.
이 PD의 도전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는 본인이 음식 다큐멘터리 를 만드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작 요리를 할 줄 모른다는 생각 이 들자 휴직을 하고 요리 유학길에 오른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는 무모한 일이었지만, 그는 ‘이것을 해야 한다’, ‘하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고 한다. 세계 3대 요리학교인 르 꼬르동 블루 런던 캠퍼스에서 보낸 2년의 시간은 여전히 그의 인생에 큰 자산으로 남아있다.
“제가 르 꼬르동 블루에 있을 때 한 가지 경험을 했어요. 식당에서 사용할 법한 아주 큰 냄비에 물을 끓여야 했는데요, 냄비 크기가 큰 만큼 오랜 시간이 걸렸죠. 그런데 어느 순간 냄비를 보니 그 많던 물 이 줄어들어 있는 거예요. 다 끓어서 증발해버린 거죠. 인생도 그렇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인생이 너무나 짧다고 느껴진 순간부터 그는 도전 앞에 망설일 수 없었다.
“PD라는 직업 자체가 도전의 연속이었어요.
매주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야 했으니까요.”
역사를 만든 도전과 새로운 꿈
인류가 만든 수많은 음식 중에서 어떤 것은 인류의 생활방식을 변화시 키고, 나아가 역사를 바꾸기도 한다. 우리의 일상에 녹아있는 음식, 빵 이 그렇다. 빵이 나타나기 전에는 곡물을 죽으로 먹거나 날 것을 가루 로 만들어 먹었다. 반죽을 만들어 불에 구우면서 빵이 탄생했고, 풍부 한 영양과 식감의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됐다. 음식을 자유롭게 휴대하 게 된 것도 빵을 통해 가능해진 것이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오래도록 지속되며 인류의 삶을 바꾼 창의적인 음식들은 모두 도전의 결과입니다. 우연한 발견일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그 음식을 발전시키는 과정은 기존에 해오던 방식이 아닌 새로운 혁신, 또는 두려움 없이 새로운 시도를 해온 이름 없는 요리사들의 공이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이욱정 PD는 도전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며 자신의 삶에서도 꾸 준히 새로운 도전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지난 2018년 3월부터 서울시의 ‘요리를 통한 도시재생 사업’의 총괄 프로듀서를 맡았다. 이 사업은 서울 도심의 낙후된 지역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시작된 것으로 회현 동과 서계동 등에 자리한 오래된 주택들이 개조를 통해 복합문화공간으 로 탈바꿈했다. 그중 회현동에서는 ‘희망 도시락’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희망 도시락은 코로나19로 위기에 빠진 동네 밥집을 살리기 위해 특색 있는 도시락을 만들어 파는 프로젝트다. 2020년 말부터 진행된 것으로, 그 과정을 다큐멘터리로도 제작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SK그룹, 네 이버, LS전산, 배달의 민족 등 다양한 기업의 후원을 받았고, 연장 선상 의 또 다른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었다. 배달의 민족이 지원하는 소규 모 식당 사장님들을 위한 아카데미, 네이버 예약을 활용한 골목 밥집 도시락 주문 등이다.
이제 그의 도전은 조금 더 신중해졌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 만큼 성취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것에 도전하 겠다는 생각이다. ‘희망 도시락’ 프로젝트도 회사의 수익보다는 공동체 의 발전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도전이었다. “PD로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제가 만든 콘텐츠를 본 사람들의 생각, 인식 등에 변화가 있을 때예요. 한 중학생의 리뷰가 기억나요. <누들로드>를 본 후에 국수를 먹었는데, 본인 앞에 놓여있는 국수가 달리 보였다고 해요. 국수 안에 그렇게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고, 국수라는 음식이 얼마나 위대한 창조물인지 깨달았다는 걸 읽고 뿌듯했어요. 지 금은 희망 도시락을 진행하면서 그런 보람을 느껴요. 코로나19를 극복 하기 위한 동네 밥집 사장님들의 노고를 다큐멘터리에 고스란히 담았 고, 그것이 선한 영향력을 만들어냈으니까요.”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걸고 하는 도전은 늦은 때가 없다고 생각해요.
어느 나이에, 어떤 인생의 순간에 도전해도 의미 있죠.”
주저 말고 지금 도전할 것!
그의 도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최근 그는 창의성에 대한 다큐멘 터리를 준비하고 있다.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기후변화처럼 과거 의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우리가 맞닥뜨린 다양한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창의성이 필요한 시점이며, 성공하는 도전의 바탕에는 창의성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한 올해에는 서계동에 위치한 요리인류 청파언덕집에서 취약 계층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매주 피자를 구워 보내는 ‘희망피자’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욱정 PD가 강연자로 서면 늘 하는 이야기가 있다. 도전을 하는 사람 은 주변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것. 주변에 피해를 주고, 짐이 되는 도전은 시도 안 한 것만 못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대신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들일 때 빛을 발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걸고 하는 도전은 늦은 때가 없다고 생각해요. 어느 나이에, 어떤 인생의 순간에 도전해도 의미 있죠. 나중에는 도전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시간이 와요. 도전에 앞서 걱정하고 두려워할 시간에 본인이 꿈꾸는 것을 과감하게 도전해보는게 어떨까요? 그 과정에서 실패하고, 실수하면서 후회할 수도 있지만 그게 더 낫다고 생각해요.”
두려움 없는 도전으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온 이욱정 PD. 그가 직접 경험한 도전의 가치를 되새겨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