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평생 동안 ‘어머니’라 불렀는데, 이제는 ‘엄마’라 부르고 싶네요. “엄마, 엄마, 엄마….” ‘엄마’라는 단어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눈물이 나려고 합니다. 우리 모녀만의 비밀이지만, 저는 엄마의 딸로 태어나 많은 아픔과 절망을 경험하며 살았습니다. 엄마는 제가 부친과 똑같다는 이유로, 고양이 눈을 닮았다는 이유로 잔인할 만큼 저를 미워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사람들도 제 눈빛을 싫어할까봐 누군가를 바라볼 수 없었어요. 가끔은 저를 사랑했었는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구타와 혐오감을 제게 던지면서도 저를 사랑했었나요? 괜찮습니다. 실은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세월이 있었죠. 제가 어이없게도 도박에 빠졌을 때 서럽게 울며 가슴을 쥐어짜던 엄마의 그 처절한 모습을 저는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엉~ 엉엉 우우~” 울며 온 방안을 뒹굴던 엄마였으니까요. 한들거리는 원피스를 입은 채로 옷을 쥐어뜯는데 그 여름원피스는 어찌나 질기던지요. 대신에 우리의 가슴이 찢어졌던 그날, 우리 모녀는 지옥에서 몸부림치는 아귀의 모습과 흡사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이고~ 내 딸, 내가 낳은 내 딸. 내가 낳았는데. 가엾은 내 딸….” 태어나서 그 날처럼 내 딸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던 때는 없었습니다. 엄마를 부둥켜안으며 함께 통곡하던 그날을 기억합니다. 목마저 잠겨버린 엄마는 내가 안고 받쳐주지 않으면 그대로 목숨이 끊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엄마가 죽을 것 같아 나는 온몸을 동동 굴렀습니다. 내가 노후에 살아갈 집,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남겨둔 전원아파트가 도박으로 날아가 내가 빈털터리가 된 것을 처음 알았으니 엄마의 마음은 오죽했을까요. 엄마, 엄마도 아시죠? 그날 처음으로 엄마에게 안겨 보았다는 것을요. 서투른 포옹과 감동 안에서 절절한 마음으로 도박을 끊어야겠다고 맹세를 하게 됐지요.

그러나 중독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엄마와의 약속도, 저 자신과의 약속도 지켜낼 수 없었습니다. 그날의 약속이 진정 거짓은 아니었지만 도박의 유혹은 저에게 사정을 봐주지 않았습니다. 이후로도 엄마는 마지막 한 번을 외치며 세 번이나 더 집을 사 주었습니다. 용서밖에는 다른 길이 없었던 외로운 엄마의 심정이 어떠하였을까요? 이 지나간 이야기를 왜 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도 죄송한 마음 뿐 입니다. 열 번도 일백 번도 넘게 도박으로 통장을 비우고 어쩔 수 없이 고백할 때 엄마의 얼굴은 하얗게 질리고 놀라움으로 온몸의 힘이 빠져 털썩 주저앉아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저 또한 정말 통곡하며 온몸을 찢어버리고 싶었지만 모든 것이 마음처럼 되지 않았어요. 엄마! 저의 뇌가 미쳐서 발광했던 날이 있었지요. 엄마의 생명과도 같은 노후대책, 마지막 자금을 몰래 훔쳐 며칠간의 도박으로 날렸던 일을 기억하시나요? 그리고 책임감도 없이 목숨을 끊으려 했던 저는 이제야 위로의 글을 올립니다. 엄마, 제가 다 알고 있어요. 엄마의 좌절감이 어떠하였을지를요. 그러니까 엄마, 이제는 슬퍼하지 마세요. 엄마 딸이 알고 있어요. 사랑하는 엄마! 제가 단도박을 하고 사람다운 삶을 살기까지 버리지 않고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88세까지 건강하심에 감사합니다. 어쩌면 저기 높은 분의 뜻은 우리 모녀가 서로의 사랑을 알고 이 세상을 행복하게 살다가라는 의미가 아닐런지요. 때로는 제가 엄마를 모시겠다고 단언했던 그 순간이 미울 때도 있었어요. 처참하게 미쳐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도 되었고 극단적으로 제 한 목숨도 수월하게 버릴 수 있었겠지요. 그러나 엄마는 제가 살아야 하는 이유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살아남았어요. 엄마와 함께였기에 지금이 있고 행복합니다. 엄마, 오래오래 사세요. 제가 잘 모실게요.

- 용서를 빌며 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