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나무 냄새가 가득한 횡성숲체원
여기를 둘러보아도 산이고, 저기를 둘러보아도 산이다. 여름내 열기를 양분 삼아 자란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울창한 숲이다. 버스의 문이 열리자 향긋한 솔 내음이 폐부를 자극한다. 아마도 숲이 내뿜는 피톤치드 냄새일 것. 국립숲체원 1호, 횡성숲체원의 첫 인상은 나무 냄새였다.
“같은 강원도라도 여기는 진짜 산에 온 기분이 드네요. 은은한 솔향에 기분이 착 가라앉는 느낌도 들고. 올해 휴가도 제대로 못 갔는데, 여기 오니 제대로 휴가를 온 기분이 듭니다.”
숲이 내뿜는 기운에 다들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실제로 숲이 내뿜는 피톤치드는 중추신경계를 자극시켜 스트레스를 낮추고 심리적 안정을 주며 숙면을 유도한다.
“게임에 몰입하셨던 분들은 게임 생각 밖에 하지 못하거든요. 여러 가지로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요. 이런 분들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 숲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번 프로그램을 기획한 이승철 전문위원의 말이다.
카지노를 찾는 고객들 중 일부는 장기간 도박으로 인해 자신의 삶에 대한 희망을 상실하고 카지노 주변에 장기 체류하거나 습관성 도박자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희망씨앗찾기>는 이런 장기 체류자들이 일상적인 환경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회복과 치유효과를 누릴 수 있도록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참가자들이 경관이 좋은 곳을 찾아 함께 어울리고, 가벼운 신체활동을 함께 하면서 삶의 변환점을 모색한다. 이곳 횡성숲체원은 이런 점에서 프로그램의 의도와 꼭 맞는 장소였다.
<희망씨앗 찾기>는 장기 체류자들이 일상적인 환경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회복과 치유효과를 누릴 수 있도록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나무 이야기와 함께한 숲 트래킹
숙소에 짐을 풀고, 첫 일정으로 가벼운 트래킹이 시작됐다. 숲체원 북쪽으로 난 산책로를 따라 이어진 코스 산책이다. 빽빽한 수림 가운데 놓인 가파르지 않은 산책길은 전날 내린 비로 촉촉했다. 바닥에는 여러 해 동안 쌓인 낙엽송 잎이 깔려 맨발로 걸어도 될 정도로 폭신폭신했다. 숲 밖은 햇빛이 내리쬐 후끈했지만 숲 안은 그늘 속에 바람까지 불어 선선했다. 참가자들은 숲 해설사를 앞세우고 주위의 나무들을 감상하며 천천히 산책했다.
그러기를 잠시 참가자들은 첫 목적지인 숲속 쉼터에 도착했다. 쉼터에서는 숲 이야기가 이어졌다. 숲 해설사의 나무이야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참가자들은 궁금한 점을 조금씩 풀어냈다. 가문비나무, 뽕나무, 소나무, 전나무, 잣나무 등 온갖 나무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시원한 그늘 아래 조곤조곤한 목소리의 숲 해설사와 질문하는 참가들의 목소리가 퍼졌다.
몸을 움직이며 느끼는 즐거움
숲 이야기 이후에는 숲속 힐링 체험이 이어졌다. 쉼터에서 5분 가량 산길을 걸어 도착한 나무 데크에서 나무 막대를 이용한 건강체조와 풍욕 시간이 마련됐다. 건강체조는 50센티미터 길이의 작은 나무막대를 이용해 온몸 구석구석을 스트레칭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대부분의 참가자가 50대 이상, 그간 게임과 생업 때문에 운동이란 걸 제대로 해본 적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나무 막대를 가지고 하는 체조에 쭈뼛쭈뼛하기를 잠시, 세 번째 자세부터는 곧잘 따라하며 주변에 농담을 건네기 시작했다. 몸이 조금 덥혀지자 옆 사람을 보고 자세를 바로잡아 주기도 하고, 자세가 잘 잡히는 참가자는 자랑을 늘어놓기도 한다. 어깨와 허리, 하체와 다리 등 몸 구석구석을 좋아지게 하는 체조는 20여 분이나 계속됐다. 곧이어는 단체 놀이 시간이 이어졌다. 동요를 부르며 긴 막대를 바닥을 두드리며 방향을 바꾸는 놀이였는데, 방향을 바꿀 시점을 제대로 못 맞추자 웃음보가 터졌다. 하지만 두세 번 반복하자 곧잘 되는 것이다. 다함께 뭔가 된다는 걸 느껴서일까, 참가자들은 연신 “한 번 더”를 외쳤다. 그렇게 단체 놀이 시간은 예정보다 길어졌다. 얼굴에 땀방울이 흘러도 다들 입가에는 웃음기가 돈다.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도 오랜만에 몸을 움직였더니 개운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온몸의 독소가 빠져나가는 기분이란다.
땀 흘린 후에 맛본 진짜 힐링
숲 힐링의 마지막 순서는 풍욕이었다. ‘풍욕’은 바람이 잘부는 곳에서 바람을 맞는 ‘바람 목욕’이다. 숲 가운데 자리를 깔고 누우니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바람이 통한다. 한참 몸을 움직인 후 가만히 바람을 맞고 있으니 별천지가 따로 없다. 신선이 된 마냥 몸에 바람기가 느껴진다. “아, 좋다”하는 탄성이 곳곳에서 터진다. 숲 체험지도사는 부작용이 없고 풍욕의 효과를 배가시켜 준다는 호호바 오일을 참가자들의 손등에다 발라준다. 땀이 가시고 졸음이 쏟아진다. 아무 생각도 안 든다. 진짜 힐링은 이런 게 아닌가 싶다.
즐거움의 체험이 바로 희망
여름날이지만 숲속이라 해는 생각보다 일찍 떨어졌고, 어둠은 그만큼 일찍 찾아왔다. 숲과 함께하는 힐링 체험은 이날 저녁까지 이어졌다. 저녁식사 후에는 강당에 모여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도심의 빛과 공해가 없는 산중은 어두웠지만 여러사람과 함께있다는 생각이 들어 오히려 따뜻하고 편안했다. 오늘 참가자들은 좋은 것을 보고, 즐거운 체험을 하면서 행복감을 몸으로 느꼈을 것이다. 이렇게 도박 이외의 삶이 즐겁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희망의 씨앗’이 아닐까 싶다. 행복을 맛본 오늘 이들의 가슴에는 분명 희망의 씨앗이 뿌려졌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