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유람은 식후경, 청풍호 유람은 식전경!
강원랜드에서 20여 명의 회원을 태운 버스가 1시간 남짓을 달려 청풍호수 유람선 선착장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린 회원들은 봄기운을 담은 호수바람을 들이마시며 기지개를 켠다.
“오늘 참가한 회원들은 모두 단도박 이후 일상으로 복귀하신 분들이에요. 도박으로 허비한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다 보니 쉽게 지치기도 하잖아요.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힐링을 받으며 여유를 가지면 좋겠어요. 워크숍 성공은 회원들의 표정 변화에 달려 있는데, 프로그램이 진행될수록 얼굴이 밝아지는 걸 지켜볼 때마다 보람을 느껴요.”
이번 워크숍을 통해서도 회원들의 얼굴에 행복과 희망이 가득해지길 바란다는 이영주 전문위원의 설명이다. 본격적인 워크숍에 앞서 호수의 풍광을 즐기며 힐링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청풍호 유람을 준비했다. 그녀는 여행(女幸)모임 회원들과 함께하다가 두어 달 전부터 단비모임을 맡았다.
유람선에 승선한 회원들은 창쪽으로 자리를 잡고 느긋하게 바깥 풍광을 즐긴다. 멀리는 수많은 산봉우리가 호수를 겹겹이 둘러싸고 있고, 눈앞에는 옥순봉 등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지나간다. 회원들은 모처럼의 여유에 평온함을 느끼는 듯하다.
한 시간 남짓의 청풍호 유람을 마친 뒤 이 지역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떡갈비 집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떡갈비로 한상을 차린 테이블에 둘러앉은 회원들의 화두는 떡갈비 맛 품평이 아니라 청풍호 감상평이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청풍호 유람은 식전경이었어!”
“워크숍 성공은 회원들의 표정 변화에 달려 있는데,
프로그램이 진행될수록 얼굴이
밝아지는 걸 지켜볼 때마다 보람을 느껴요.”
풍경화로 마음속을 들여다보다
오후부터 본격적인 워크숍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시간은 동국대 예술대학원 유미 교수가 진행한 ‘풍경화 그리기’였다. 실력을 테스트하는 것이 아닌 그림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 도화지와 크레파스를 앞에 두고 앉은 회원들의 눈빛은 호기심 반, 걱정 반이다.
“지금부터 10가지 요소를 넣어서 그려볼 거예요. 제가 말씀드린 것들을 순서대로 하나씩 도화지에 그려 넣어 풍경화를 완성해 보세요.”
첫 번째 요소는 강이다. 도화지 중간을 시원하게 가로지르는 강을 그리는 회원이 있는가 하면 계곡을 따라 구불구불 그리는 회원도 있다. 이어서 산과 논밭을 그려 넣고 길, 집, 나무, 사람도 차례대로 그렸다. 그리고 꽃과 동물, 바위도 그려 넣었다.
처음에는 “손에서 크레파스 놓은 지가 언제인데 이 나이에 그림 그리기냐”며 마뜩잖은 기색을 내비치던 회원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그림 그리기에 몰입하는 눈치다. 똑같이 10가지 요소를 넣은 그림이지만 완성된 풍경화는 제각각. 유미 교수는 각 요소마다 의미가 있고, 그려 넣는 방식에 따라 내면을 읽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산을 그릴 때 산봉우리를 유난히 많이 그린 경우는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걱정하는 분들입니다. 평소 이런 마음을 잘 들여다볼 줄 알아야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어요.”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 놓는 일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법도 한데 도박이라는 긴 터널을 해쳐나온 동지의식 때문일까. 서로 내면을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어 보였다.
이날 진행한 프로그램은 미술심리치료법 중 하나인데 순서에 따라 풍경화를 그려 심리를 확인할 수 있는 풍경구성기법(LMT)이다. 그림을 통해 단순히 자신의 마음 상태가 일상적이지 않다는 걸 깨닫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마음을 위로하고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날 워크숍에서는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찾아볼 예정이다.
“미술 심리치료법은 그림을 통해
단순히 자신의 마음 상태가
일상적이지 않다는 걸 깨닫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마음을 위로하고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몸이 변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할 수 없다
현대무용가이자 춤 문화운동가인 최보결 박사(한국표현예술치료학회)가 진행하는 힐링 댄스 시간. ‘댄스’라는 말에 부담을 느낀 듯 다소 소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회원들에게 그는 ‘몸이 변하지 않으면 마음도 변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마음 가는 대로 춤을 추다 보면 누구나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것.
“여러분, 몸은 그냥 살덩어리가 아닙니다. 몸을 보면 그 사람의 삶이 보여요. 몸이 풀리면 마음이 풀리고 마음이 풀리면 우리의 삶도 술술 풀리게 됩니다.”
둥글게 빙 둘러선 채 서로의 손을 잡고 음악에 맞춰 원을 돌기 시작했다. 어깨를 들썩이고 발목과 골반을 흔드는 과정을 통해 조금씩 몸이 풀리자 어색하던 얼굴에 웃음기가 가득해진다. 소극적인 몸짓도 잠시, 프로그램이 진행될수록 웃음소리도, 목소리도, 움직임도 커졌다. 보기 좋게 상기된 볼, 생기 도는 눈빛, 살짝 올라간 입꼬리. 회원들의 얼굴 표정이 시작할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밝아졌다. 다리가 불편하다며 의자에 앉아 있던 회원들까지도 춤사위에 빠져들었다.
좋은 에너지가 충만해진 듯 훨씬 밝아진 표정으로 저녁식사 장소로 이동하는 동안 삼삼오오 모여 서로의 소감을 나눈다.
“30대 초반으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어요. 뭐든지 해낼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어요.”
“맞아 맞아, 몸도 마음도 개운해진 것 같아요.”
서로의 말에 맞장구치며 자신들의 느낌을 표현하느라 바쁘다. 앞으로 이어질
2박 3일간의 알찬 프로그램이 이들을 얼마나 변화시킬지 기대가 커진다.
“몸은 그냥 살덩어리가 아닙니다.
몸을 보면 그 사람의 삶이 보여요.
몸이 풀리면 마음이 풀리고
마음이 풀리면 우리의 삶도
술술 풀리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