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서 가장 창피한 싸움
도박중독 심리를 심리학으로 공부하면서도그 위험에 스스로 빠질뻔한 적이 있었다. 미국 유학 시절 방학 중 지인을 따라 선상카지노를 갔었다. 태어나 처음 가본 그곳은 한마디로 별천지였다. 번쩍이는 불빛 아래 사람들의 환호성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고, 무대에서는 끊임없이 공짜 공연이 펼쳐졌다. 음료도 공짜였고, 맥주도 우리 돈으로 1,000원 남짓에 불과했다. 현실에서는 반겨주는 사람 하나 없는 유학생이었지만, 그곳 사람들은 누구나 반갑고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한동안 살펴본 카지노 게임들은 너무도 간단했다. 한국에서 복잡한 고스톱으로 나름 단련된 나에게 그곳 게임들은 ‘룰’이 지나치게 단순했다. 첫날은 적은 돈으로 가볍게 게임을 경험하고 돌아왔다. 며칠을 곰곰이 생각해보고 몇 가지 방법을 잘 적용하면 돈을 딸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니, 이렇게 간단하게 돈을 벌 수 있는데 아무도 모른단 말이야. 역시 나는 머리가 좋은가 봐”라며 스스로에게 감탄했다.
며칠 뒤 바로 카지노로 달려갔다. 돈을 딸 자신이 있었기에 유학생 신분으로 다소 무리해 큰 금액을 찾았다. 상관없었다. 어차피 돈을 딸 방법을 알고 있기에, 자본금이 클수록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예상대로 돈을 땄다. 하지만 어는 순간부터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도저히 일어날 거 같지 않은 일들이 연속되며 돈을 잃어갔다. 하지만 운은 돌고 돌기에 조금만 버티면 다시 이길 수 있다고 믿었다. 문제는 이미 돈을 잃어 가진 돈이 별로 없다는 것뿐. 이제 곧 찬스가 올 텐데…, 놓치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았다. 옆에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지켜보는 아내에게 빨리 돈을 찾아오라고 시켰다. 하지만 아내는 완강히 거부했다. 이미 많이 잃었으니 더는 안된다고 했다. 그 자리에서 아내와 싸웠다. 집에 돌아올 때까지도 아내와 말을 하지 않았다. 돈만 찾아왔으면 분명히 이길 수 있었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집에 와서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달았다. 내 인생에 가장 창피하고 바보 같은 싸움을 아내와 했다는 것을.
일확천금? 도박에 대한 비현실적 낙관주의!
도박으로 돈을 쉽게 벌 수 있다면 카지노는 유지될 리 없다. 게임에는 돈을 딸 수 있는 방법보다 돈을 잃을 수밖에 없는 더 많은 교묘한 룰이 고안되어 있다. 그 모든 것이 합법적이다. 쉽게 말해 사람들이 돈을 잃게 만들어 기금이 조성되도록 정밀하게(일반인은 알지도 못하는 고급 과학지식을 이용해서) 개발한 장치가 게임이다. 만약 게임이 많은 사람이 돈을 벌 수 있게 설계되면 그 설계자, 관리자, 카지노 대표는 배임죄로 감옥에 갈 것이다. 나중에 사회심리학을 공부하며 알게 됐지만, 그날 하루 내 머릿속에는 비현실적 낙관주의(Unrealistic Optimism), 통제감의 착각(Illusion of Control), 도박자의 오류 (Gambler’s Fallacy), 손실회피(Loss Aversion)등 심리학에서 도박중독으로 이끄는 수많은 심리학적 오류가 다 일어났다. 하지만 그때 당시는 너무도 합리적이고, 그럴싸하다고 생각했기에 도박으로 내 인생이 한순간 달라질 수 있다고 믿었다. 다행히 어리석음에 빠진 내 곁에는 나를 말려주는 아내가 있었고, 더 다행히 그녀는 내 고집을 꺾었다. 그뒤에도 나는 종종 카지노에 갔고, 당연히 돈을 잃었다. 그래도 그날 이후 항상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잃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는 그 손실을 받아들일 만큼 현명하다.
카지노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돈을 버는 사업
지금까지 진행된 도박 관련 연구들은 이미도박에 빠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할 뿐이다. 가장 중요한 ‘누가 어느 순간, 어떻게 도박에 중독’되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당연히 자신도 도박의 늪에 빠져든 순간을 인식하지 못한다. 머릿속에는 수많은 심리적 오류가 일어나지만, 본인은 그것을 오류로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한참이 지나 너무 많은 것을 잃은 뒤 겨우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오는 정도다. 도박은 처음부터 사람들이 돈을 잃게 설계된 게임이다. 돈을 벌려고, 잃은 돈을 되찾으려고 도박을 하는 것은 마치 물이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만큼 이상한 일이다. 만약 그런 생각이 조금이라도 들면 바로 도박을 멈춰야 한다.
카지노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돈을 버는 사업이다. 술집에서 술을 마시면 돈을 내듯 도박장에 가서 놀려면 당연히 돈을 내야 한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은 비싼 술집에 가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싼 술집에 가듯, 도박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 돈을 잃으며 게임처럼 즐겨야 한다. 도박을 하러 가는 길이 즐겁고, 도박하는 동안 재미있고, 도박이 끝난 뒤에는 즐거운 추억거리가 되어야 한다. 이 중 어느 하나라도 즐겁지 않으면, 그럼에도 카지노로 향하는 발길을 멈출 수 없다면 그게 바로 ‘중독’이다.
- 허태균 교수는?
-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사후 가정사고, 후회, 도박, 여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대표 저서는 <어쩌다 한국인> (중앙북스), <가끔은 제정신>(쌤앤파커스) 등이 있다. tvN의 시사·교양 프로그램 ‘어쩌다 어른’에 출연, 한국인들의 심리에 대한 강연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 본 칼럼은 KLACC 자문위원의 참여로 행위중독에 대한 예방, 치료, 실천 등의 이야기가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