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가족, 고창군 나성리 가족이 되다
전북 고창군 나성리에 들어섰다. ‘책마을해리’를 찾아 구불구불한 길을 달리는 동안 딱히 마주친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마을은 고즈넉하고 자그마하다. ‘이곳에 정말 책마을해리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슬금슬금 들무렵, 저 멀리 커다란 나무 위에 웬 작은 집 한 채가 올라가 있는 모습이 보인다. ‘저기가 책마을해리구나’하는 반가운 마음이 왈칵 솟아오른다.
취재진을 반긴 것은 ‘마을책방’이라 이름 붙은 공간에서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이대건 촌장이었다. 낯선 이들을 살가운 미소로 반기는 모습에서는 노상 기쁘게 방문객을 맞이하는 그의 일상이 묻어난다.
이대건 촌장이 처음 이곳과 인연을 맺은 것은 할아버지 때문이었다. 이지역에서 천석꾼이었던 할아버지가 지었던 ‘나성초등학교’가 2006년 폐교된 뒤 인수한 것이 바로 자신이었던 것.
“폐교가 된 뒤에 이 자리에 수익사업을 해보려는 사람들이 꽤 드나들었어요. 그중에서는 도축장을 짓겠다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 때문에 마을 어르신들이 난리가 났지요.”
이대건 촌장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인수했다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는 명확한 의식을 갖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교육 공간으로 만든 이곳에 그 뜻이 계속 이어지길 바랐던 것.
“2006년에 인수한 뒤 주말마다 내려왔어요. 주말에 ‘책학교’도 열고, ‘도서관’도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운 거죠. 아이들은 한 주 건너 한 번씩 놀토에 데리고 왔고, 주말 동안 주변 부속건물·관사·기숙사들을 고치기 시작했죠. 그런데 6년을 오고 갔지만 진도가 나가질 않더라고요. 결국 2012년 2월에 가족과 의논해 함께 내려왔어요.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인 큰딸과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작은딸에게 이곳에 동물원을 지어주겠노라고 약속하고요. 결과적으로 그 약속은 지키지 못했지만요.”
이대건 촌장은 세월이 꽤 흘렀지만 아이들에게 여전히 미안함을 담고있는 듯한 미소를 희미하게 짓는다.
낯선 이들을 살가운 미소로 반기는
모습에서는 노상 기쁘게 방문객을 맞이하는
그의 일상이 묻어난다.
가족이 함께 누리는 기쁨
아내 이영남 씨는 “남편의 의사를 존중해 함께 내려왔다”고 말했지만 그 이면에는 아이들이 어릴 때만큼은 시골에서 키우고 싶다는 꿈도 있었음을 이야기했다. 초등학생이던 두 딸과 텃밭을 가꾸며 수확의 기쁨을 알게 하고, 닭장에서 달걀을 거두고 커다란 개도 키우는 생활을 함께 누리고 싶었다고. 서울에서 지낼 때는 새벽에 나가 밤늦게 돌아오는 남편 얼굴을 제대로 보기도 힘들었지만 이곳에 내려온 뒤로 가족의 일상은 아주 달라졌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늘 함께하는 흔치 않은 가족으로 지내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에서의 시간이 여유가 가득한 목가적 시골생활이었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시작은 분명 작았는데 8년여의 세월이 흐르면서 ‘책마을해리’가 일으킨 변화의 바람은 지역을 움직일 만큼 컸다.
교실 두 개를 터서 만든 도서관에는 3만 권이 넘는 책들이 천정까지 닿을 듯 차 있고, 이곳을 방문한 아이들은 책을 읽을 뿐 아니라 글을 쓰고 직접 책을 만드는 체험을 한다. 마을 어르신들을 모셔다가 그림을 그리고 작품 전시를 하는가 하면 한지·활자체험 등 책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 역시 아이들을 대상으로 쉴 새 없이 계속되니 주중부터 주말까지 이들 가족의 삶은 함께 일을 도와주는 식구들까지 포함해 바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이대건 촌장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은 서울과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큰딸 우현이, 작은딸 다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는 시간은 차 안에서 오롯이 부녀가 속 깊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었고, 매일 저녁 거실에 둘러앉아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이 가족이 누리는 가장 큰 기쁨이었다.
우현이가 중학교를 졸업한 뒤 고교 진학 대신 북스쿨링을 선택했을 때 부부가 결국 큰딸의 생각을 존중할 수 있었던 것도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신뢰와 존중이 기반이 되었기 때문이었을 터다.
“딱 한 사람, 아버지께 여쭤봤어요. ‘손녀가 학교를 안 가겠다고 하는데 어쩔까요?’ 아버지 반응이 ‘너도 그랬는데 뭘 그러냐’ 하시더라고요. 아이가 작년에 검정고시를 치렀는데 아버지가 그걸 못 보시고 돌아가신 게 아쉽기는 하지요.”
이대건 촌장은 이야기 끝에 “사춘기 아이들은 못 이긴다”라며 웃는다. 그 웃음 사이사이로 딸들과 함께할 시간이 점점 줄어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엿보인다.
이대건 촌장에게 책마을해리는 가족의 공간,
더 확장된 개념의 가족이 함께하는 곳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가족
책마을해리에는 딱 하나, 없는 게 있으니 바로 텔레비전이다. 현대인들의 휴식시간을 온전히 차지하는 텔레비전이 없는 삶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도시에서의 삶과는 확실히 다릅니다. 학원이 없으니 학원에 안 가고, 텔레비전이 없으니 텔레비전을 볼 시간이 필요 없죠. 그러다 보니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집니다. 조금 더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거예요. 한 가지 아쉬운 건 시골이다 보니 사람을 만날 커뮤니티가 좀 작은데 그걸 확장하는 게 바로 주말의 ‘책학교’입니다. 20~30명이 모여서 함께 책을 읽고 공동작업을 하면서 또 하나의 새로운 가족, 새로운 학교,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가죠.”
이대건 촌장에게는 아내와 두 딸이 있지만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가족이 함께 있는 셈. 그들과 ‘함께’가 아니었다면 결코 이루지 못할 꿈들을 함께 꾼 가족말이다.
이대건 촌장은 중요한 말을 덧붙인다. 함께 출판계에서 일했던 아내가 얼마나 감사한 존재인지, ‘책마을해리’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행사에 자원봉사자로 기꺼이 일을 도와온 두 딸이 얼마나 큰 존재인지 말이다. 아내 이영남 씨는 이 관계성에 책이 가진 의미를 더한다.
“아이들이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책을 읽으면, 자라서도 감성이 말랑말랑해지는 느낌이 있어요. 엄마가 읽어주는 책, 아빠와 함께 읽는 책, 이런 것들이 아이들의 공감능력을 키우는데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그런 감성과 따뜻함을 가진 어른으로 성장하면 좋겠어요.”
웃음 많고 살가운 남편, 이성적이고 차분한 아내가 서로의 이야기와 생각을 거들고 보완하며 자분자분 이야기를 나눈다.
책마을해리는 책이 중심이 된 공간이다. 그러나 이대건 촌장에게 이곳은 가족의 공간, 더 확장된 개념의 가족이 함께하는 곳이다.
“늘 위로 올라가는 상승적인 것만이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처음 전자책이 나왔을 때 많은 사람이 종이책은 곧 없어질 거라고 난리를 쳤지만 종이책은 여전히 건재하잖아요. 이 공간은 ‘올라가는 거 말고, 한번 끌어내려 보자’라는 마음을 먹고 만든 곳이에요.”
먼 훗날,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꿈의 끝에는 ‘대안학교’가 있음을 밝히는 이대건 촌장. 하나 확실한 것은 그곳에서도 여전히 ‘사랑하는 가족’은 그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로 남아 커다란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