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아내가 나를 버렸다면
몇 번의 거짓말과 용서 끝에 아내의 손에 이끌려 출입정지를 신청했다. 3년의 정지. 그 정도면 도박을 새카맣게 잊을 줄 알았다. 그 뒤 직장을 옮기면서 주말부부가 되었다. 착실하게 직장 생활을 하는 듯했는데 정지가 풀리자 마음이 흔들렸다. 정신을 차리니 다시 카지노였다. 아내 몰래 집을 담보로 빚을 내 도박을 시작했는데 6개월 만에 1억 3,000만 원을 잃고 말았다. 절망한 아내는 이혼서류를 내밀었지만 일곱 살, 세 살 난 아이들 때문에 차마 도장을 찍지는 못했다. 그것이 ‘마지막 용서’라는 걸 느꼈다. 당장 영구정지를 신청했다. 현재는 개인회생 절차에 따라 5년에 걸쳐 채무변제를 진행하고 있다. 영구정지를 신청한 지 어느덧 4년이 훌쩍 지났다. 종종 지인들로부터 ‘카지노에 갔다가 얼마를 땄다’는 식의 무용담을 듣곤 한다. 그럴 때마다 예전 기억이 떠오르지만 가고 싶어 안달 나던 시절은 지났다. 가장 고마운 건 아내다. 다시는 안하겠다는 남편의 다짐이 연거푸 물거품으로 변할 때마다 아내는 가슴을 치며 괴로워하면서도 내밀었던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지 못하는 나를 이해해줬다.
“만약 그때 아내가 저를 버렸다면 지금까지도 도박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거예요. 아내가 저를 각성하게 했고, 아이들이 희망이 되어 주었죠. 가족의 힘이 가장 컸습니다.”
하다못해 10만 원 빌린 돈까지 다 갚았지만 주변에는 여전히 ‘노름꾼’이라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가 적지 않다. 그렇다고 주눅 들지는 않기로 했다. 그들에게 떳떳이 말할 수 있을 만큼 일상에 성실해졌고, 삶에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영풍의 한 제련소에 취직해 안정적인 직장 생활도 하고 있다. 앞으로 1년 정도만 더 고생하면 개인회생을 위한 채무변제도 완전히 청산할 수 있다. 면목이 없어 발길을 끊었던 가족행사도 식구들과 함께 참석하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형님 내외도 반갑게 맞아주시니 고맙고 힘이 난다. “이제 노름 안 하제.”하시며 안쓰러워하는 연로한 부모님을 볼 때마다 ‘더 열심히 살며 효도해야겠다’ 고 다짐하곤 한다.
삶의 소소한 행복이 눈에 들어오다
얼마 전부터 낚시를 시작했다. 여러 해 동안 연락이 뜸하던 처남이 ‘낚시 가자’며 연락을 했다. 취미가 낚시였다는 걸 기억하고 먼저 손을 내밀어준 것이다.
“돌이켜 보면 모든 불행은 욕심에서부터 비롯되었던 것 같아요. 적당히 만족할 줄 모르고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불행해졌어요. 욕심을 내려놓으니 삶의 소소한 행복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이제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착실하게 직장 생활하며 아이들이 건강하게 커가는 걸 지켜보는 게 꿈이 되었다. 어느덧, 큰아이가 5학년이고, 작은아이도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아이들이 공차는 걸 무척 좋아해서 일요일이면 운동장에 나가 함께 공을 찬다. 공을 쫓아다니며 해맑게 웃는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만약 그때 아내가 내 손을 놓아버렸다면 이 아이들이 얼마나 불행졌을까’라는 생각이들면 가슴을 쓸어내린다. 아내는 내 인생의 영원한 봄날 같은 존재다. 날이 풀리면 두 아이를 데리고 낚시터 나들이도 할 참이다. 생각만 해도 행복해진다.
* 본 칼럼은 KLACC을 통해 단도박에 성공한 사례자의 이야기를 모티프로 재구성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