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의 처방을 위한 순서
의사면허를 획득하고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게 되면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할 일들이 갑자기 많아지게 된다. 그 중 처방은 가장 중요한 의사의 권한이며 의사의 지식과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처방을 잘 배우기 위해서 의대 6년과 전공의 5년, 전임의 1~2년을 보내게 되는데 그렇게 긴 세월을 보내고 나서도 쉽지 않은 것이 처방이라, 의사 입장에서는 최선의 처방을 하고 있는지 늘 자문하게 된다.
처방에는 순서가 있다. 첫 번째는 활력 징후(vital sign)에 대한 확인이다. 질환이 심하지 않을 때는 일반적으로 8시간에 한 번씩 확인하지만, 질환이 심해지면 활력 징후 확인 간격도 줄어들게 된다. 두 번째는 휴식에 대한 기술이다. 휴식 기술 중 대표적인 것은 침상안정(bed rest)이다. 좀 더 강한 안정이 필요하고 움직임을 최대한 억제해야 하는 경우에는 절대 침상안정(absolute bed rest)으로 처방을 내리게 된다. 세 번째는 먹는 것, 즉 식이에 대한 기술이다. 일반 정상식이(normal regular diet), 당뇨식이, 저염식이 등으로 다양하다. 네 번째부터는 투여해야 되는 주사제나 약물에 대한 기술이 이어지게 된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최우선
당장의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것은 처방 순서 중 첫 번째인 활력 징후다. 병원에는 위급한 환자들이 많은 만큼 활력 징후가 처방의 첫 번째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처방의 두 번째 순서인 안정에 중점을 두기로 한다. 일반인들은 치료라고 하면 흔히 수술, 시술, 약물 투여를 떠올린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 안정이 치료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례로 평생 다양한 병으로 고생한 조선시대의 임금 세조는 자기 체험을 근거로 ‘심의론(心醫論)’을 주창했다. 조선시대에는 의사를 여러 등급으로 구분하였는데 그 중에서 약을 잘 쓰는 약의(藥醫)는 3번째, 음식을 잘 조절해서 고치는 식의(食醫)는 2번째로 좋은 의사이며 가장 좋은 의사는 마음을 편하게 하여 병을 고치는 심의(心醫)라고 할 정도였다. 현대 의학의 총아인 훌륭한 약들이 나오기 이전 시대의 주장이긴 하지만 분명 새겨볼 부분이 있다. 오늘날에도 상당 수의 사람들은 약에 많이 의지하려고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음식, 운동, 좋은 휴식이 약 이상의 효과를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일반인 중 스트레스가 많거나 특이한 습관이 있는 사람 혹은 특정한 면에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중독’ 증세를 보이는 이들에게는 어떤 안정이나 휴식이 필요한 지 살펴 보자.
몸과 마음의 휴식을 위해서는
좋은 관계 유지와 취미생활이 필수다
우리의 뇌는 매일 일정 시간의 휴식을 취해야 한다. 다시 말해, 수면이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다. 수면의 역할이 모두 밝혀져 있지는 않지만 수면을 지속적으로 취하지 못하면 인지, 정서, 감각의 변화가 온다는 사실만은 밝혀져 있다. 최근 들어서는 수면을 취하지 못하면 치매의 위험성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들도 속속 발표되고 있다.
그런데 몸과 마음이 힘들고 스트레스가 많으면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다. 즉, 불면의 가장 큰 원인이 심리적인 문제인 셈이다. 그렇다면 심리적 안정을 취해야 할 텐데, 마음의 안정과 행복을 느끼기 위한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사람과 안정된 관계를 갖는 것이다. 신뢰를 느낄 수 있는 관계,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푸근한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가족과 친구, 동료와 이런 관계를 가질 수 있으면 가장 좋을 것이다. 지금 당장 이런 관계가 부족하다면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존경하고 배려하기 위해 노력해 보아야 한다. 사람은 태생적으로 미움과 화를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좋은 관계가 될 만한 사람이 있다면 되도록 감사하고, 상대방의 좋은 면을 보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런 사람과 많은 대화를 나눈다면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혼자 있는 시간에는 음악을 듣고, 미술작품을 감상하고 좋은 글을 읽으며 따뜻한 물에 목욕을 하며 심신을 편안하게 하는 것도 좋다. 운동, 사진 촬영, 그림 그리기, 노래하기 등 무언가를 만들거나 취미 생활을 가져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지나친 몰입으로 인한 부작용
적절한 치료와 절대 안정으로 돌파하자
때로는 이러한 많은 방법과 노력으로도 개선이 잘 되지 않는 경우들이 생기곤 한다. 보다 적극적인 개입이나 설득, 치료가 필요한 상황도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중독이다. 중독에 빠지게 되면 뇌의 일부는 비정상으로 변하게 된다. 일부는 불이 붙은 뇌 회로, 냉각과 소각이 필요한 뇌 회로로 변화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까지 빠지게 되면 일단 강력한 안정과 휴식이 필요하다. 약물 치료 및 입원 치료를 통한 강제적인 안정을 도모해야 하는 것이다. 불타는 뇌에 절대 안정을 줄 수 있는 치료를 병행해야 한다.
이러한 단계에 돌입하기 전, 틈틈이 뇌를 냉각시키기 위해서라도 휴식은 필수다. 앞서 기술한 것처럼 좋은 관계의 유지를 통해 또는 자신에게 맞는 좋은 습관과 방법을 찾아서 뇌 회로가 과도하게 타오르지 않고 정상적인 작동을 유지하도록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보자. 명약도 잘못 쓰게 되면 독이 될 수도 있는 것처럼, 아무리 재미있는 활동도 과하면 독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지금 당장 ‘휴식’이라고 생각해 몰입하고 있는 활동이 생활을 지나치게 방해한다면 잠시 멈추어야 한다. 멈추고 살펴보는 과정을 통해 진정한 휴식인지 아닌지 판단해 보자. 그 결과, 일시적인 쾌락일 뿐 절대적인 휴식이 아니라고 판단된다면 심신의 안정을 위한 활동을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 본 칼럼은 KLACC 내 자문위원의 참여로 행위중독에 대한 예방, 치료, 신천 등에 대한 이야기가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