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발한발 변화의 행보를 그리다

“어머니가 바다를 좋아하세요. 얼마 전에 혼자 이곳에서 썬크루즈에 머문 적이 있었는데 어머니 모시고 오면 좋아하시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노모의 손을 꼭 잡고 정동진에 도착한 임효성 전문위원. 지난 9월 가족캠프 때,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25년간 도박이 삶의 전부인 것처럼 여기며 살았다고, 아버지 병원비까지 빼돌려 카지노에서 탕진했던 아들이었다고 고백했던 사람이 그다. 그런 그를 평범하지만 따뜻한 삶 쪽으로 돌려세운 것은 8년 전 진행된 ‘희망의 씨앗찾기’ 프로그램 그리고 하이원베이커리 재활프로그램이다. 그리고 지금 그는 KLACC의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오랫동안 가까이서 그를 지켜보던 전문위원들조차 ‘저 사람이 과연 그만 둘 수 있을까’라고 반문할 만큼 몰입했고, 거짓말을 일삼아 전문위원들을 실망시키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오랜 준비 끝에 올해 5월부터 전문위원으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많은 이들이 그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그 변화의 행보 중 하나로 그는 어머니와 단둘이 여행길에 올랐다. 어머니와의 첫 여행으로 그는 바다여행 그 중에서도 낭만적인 기차여행을 택했다. 언뜻, 청춘남녀들로 북적거리는 정동진에 어울리지 않는 조합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식당으로 이동했다. 부천에서 출발하느라 아침밥도 건너뛰었다고 한다.

정동진 크루즈 호텔에서 내려다 본 풍경

“어머니, 정동진 갈까요?”

어머니가 이가 성치 않아서 음식을 제대로 씹지 못하세요. 지난해 겨울에는 오른쪽 손목을 크게 다치는 바람에 젓가락질도 힘들어 하세요.”
아들은 그런 어머니를 위해 부드러운 식감의 반찬들을 어머니 앞으로 끌어당겨 놓는다. 그런데 아들은 미처 못 보았을 것이다. ‘이건 야물다, 이건 괜찮다’ 하면서 정작 당신의 입에 맞는 음식이 있으면 아들 앞으로 조금씩 밀어내는 어머니의 은밀하지만 분주한 손길을. ‘아들이 입이 짧다’는 어머니는 수수부꾸미 접시를 돌리며 맛있으니 하나씩 집어먹어 보라고 권하신다. 마지막 하나 남은 접시를 아들 젓가락 옆에 ‘무심하게’ 내려놓으니 아들도 안 먹을 도리가 없어 보인다. 어머니의 사랑이구나 싶다. 이미 어머니의 눈에 아들은 25년씩이나 도박에 빠져 부모 속을 썩이던 아들, 아버지 병원비까지 빼돌려 도박으로 탕진했던 아들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눈에는 자랑스러움이 가득하다. 한번도 그런 적이 없는 아들이 뜬금없이 “정동진 여행 가요!”했을 때 어머니의 마음은 어땠을까.
“특별히 의미 있는 반응을 보이시지는 않았어요. 그저 ‘그러마’하시더라고요. 어머니가 원래 좀 덤덤한 편이시거든요.”
어머니도 아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신다. 그런데 다음 순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휴대폰으로 날씨부터 확인했다”며 정동진의 날씨가 생각보다 따뜻하다고 하셨다. 큰며느리가 사준 스카프도 모처럼 꺼냈다며 큰며느리 자랑을 늘어놓으신다. 어머니는 평생 처음으로 막내 아들과 함께 하는 여행에 들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생각해 보니 어머니 모시고 제대로 된 여행을 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어머니 건강하실 때 자주 모시고 여행을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내려왔어요.”
이렇게 미안해하는 아들의 말에 어머니는 안타까운 기색을 내비치며 “아이고 바쁜데 자주가 되나, 괜찮다”하신다.
“한 달에 한두 번씩은 찾아 뵈었는데 요즘은 그러질 못했어요. 올해 5월에 전문위원으로 활동을 시작한 이후로는 추석에 한번 찾아 뵙고 처음이에요.”
어머니는 “그래도 전화는 자주 하잖아”라며 잘 무렵이면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묻는다고 아들 자랑을 빼놓지 않으신다.

정동진 해변 산책로에서 찰칵

“지나간 거 생각하지 말고, 앞만 보고 살자”

임효성 전문위원은 지난 세월에 대해 누구에게도 에둘러 말하는 법이 없다. 부끄럽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자극이자 희망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머니에게만큼은 아직 망설여지는 부분이 있다. 겉으로는 담담해 보이지만 지난 25년간의 회한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 어머니에게 이젠 대견하고 자랑스러운 막내아들이 되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요즘 일정은 수능을 준비하는 수험생처럼 빡빡하다. 심리상담지도사, 가족상담지도사, 분노조절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중독전문가 2급 실기시험에 합격하고 필기시험을 앞두고 있다. 원광디지털대학 중독재활과에 입학해 공부도 새로 시작했다. 날이 갈수록 상담 요청도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어머니에게도 아들은 도박으로 속 썩이던 막내가 아니라 도박중독을 치유하고 상담하는 전문위원의 모습으로 자리잡을 것이 틀림없다.
정동진 앞바다에는 젊은이들도 붐볐다. 수능을 마친 학생들이 해변을 달리며 해방감을 만끽하고 있었다. 막 도착한 무궁화호 기차에서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우르르 내렸다. 모자도 인파에 떠밀리듯 바다 쪽으로 방향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임효성 전문위원이 어머니의 손을 꼭 잡으며 농담처럼 묻는다.
“어머니, 나는 어떤 아들이에요?”
“어떤 아들이긴 착한 아들이지.”
“전에는?”이라고 넌지시 도박중독 시절에 대해 물어도 “너는 어릴 때부터 착했어”라며 꼭 잡은 아들의 손을 당겨 당신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내가 나쁜 짓 한 적도 있잖아요.”
“네가 못된 짓을 뭐해야, 나는 그런 기억 없다. 내 새끼라 내가 잘 알지.”
“내가 집에도 안 들어가고 그랬잖아.”
“그거야 네가 밥 벌어먹고 살기 바빴으니 그랬지. 지나간 거 생각하지 말고 앞만 보며 살자. 이제는 다 괜찮다.”
언뜻언뜻 들리는 모자의 대화는 가슴을 뜨겁게 한다. 한없이 가냘프게 보이는 뒷모습과 달리 어머니의 가슴은 바다를 품고 있는 것일까. 임효성 전문위원은 “오늘의 여행도 나에게는 회복의 여정 같다”고 말한다.
어머니 손을 잡고 길을 걸어본 적이 한번도 없어 어색하다면서도 어머니의 손을 놓지 않는 임효성 전문위원. 아들의 손을 주머니 속에 넣고 걷는 어머니. 모자의 뒷모습은 정동진의 베스트 커플로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바다 앞에 나란히 선 모자

그는 지난 세월에 대해 누구에게도
에둘러 말하는 법이 없다.
부끄럽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자극이자 희망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그의 요즘 일정은 수능을 준비하는
수험생처럼 빡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