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오가던 ‘구멍가게’를
새롭게 만났던 뜻밖의 순간
골목길 어귀마다 구멍가게가 있던 시절이 있었다. 앞마당의 나무 그늘 아래 놓인 평상은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어른들의 사랑방 같은 곳이었다. 네모난 건물의 위 아래층으로 들어서는 편의점을 보며 자란 요즘 아이들에게는 낯선 풍경이다.
이미경 작가는 이러한 구멍가게 특유의 정서를 펜화로 보다 섬세하게 살려냈다. 수령이 꽤 되어 보이는 아름드리 은행나무의 이파리 하나를 표현하는 데만도 수십 번의 펜 선이 교차한다. 이파리 한 장 한 장에 한땀한땀 선을 그려 넣는 화가의 인내와 정성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런 구멍가게가 작가의 가슴에 ‘훅’하고 들어온 것은 1997년 늦가을 해질녘이었다. 그날도 아이와 함께 동네 구멍가게를 찾았다. ‘바깥어른이 동네 사람들과 낮술을 하고 고주망태가 되어 잠들었다’며 하소연을하는 주인아주머니와 안부인사를 나누고 나와 몇 걸음을 걷다가 우연히 가게를 돌아보았다고 한다. 유리문 안쪽에는 아주머니가 한곳을 응시한 채 앉아있었고 그 시선을 따라간 곳에는 추수를 마친 가을 들녘이 쓸쓸하게 펼쳐져 있었다. 때마침 녹슨 양철지붕이 저녁 햇살을 받아 보라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평소와 달리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고독하고 애잔하게 느껴졌어요. 이 분위기와 색감이 어우러진 풍경을 통째로 그림으로 표현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탄생한 첫 작품 ‘관음리에서’라는 작품이다. 그 구멍가게에는 따로 간판도 없어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 A4 사이즈만한 소품이었지만 그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데 한 달 반이 꼬박 걸렸다. 양철 지붕의 색감, 유리문 안의 모습까지 표현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선을 하나씩 채워가기가 버거웠지만 행복했다고 회상한다.
“그전까지는 정처없이 헤매는 기분이었어요. 인형도 그리고 아이들도 그려보았지만 계속 뭔가를 더 찾아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습니다. ‘관음리에서’ 라는 작품은 그런 부담 없이 그리는 내내 행복했던 작품이었습니다.”
추억과 정감 어린 ‘구멍가게’
아내로, 엄마로 살며 잊었던 이름
‘서양화가 이미경’
‘관음리에서’를 시작으로 다시 그림을 그리던 시절, 이미경 작가는 비로소 그 이전의 시간들이 자신에게 무엇을 남겼는지 알게 됐다. 아내로, 엄마로 사는 시간은 행복했지만, 온전히 충만하지는 않았다는 것. 물론 충만하지 못했던 이유는 가족들의 탓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림을 그리지 못한 채 살아가던 시간, 화가로서 ‘단절’된 시간들을 극복할 수 있을까 싶은 두려움 탓이었다.
“개인전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채 결혼을 하고 사회적으로 말하는 작품활동과도 단절된 삶을 여러 해 살았어요. ‘평생 개인전이나 한번 해보고 죽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주부라면 누구나 겪는 단절감일 거예요. 결혼 전에 왕성하게 사회활동을 했던 사람들도 결혼 후 스스로 작아지는 시기가 오잖아요. 그래도 꾸준히 그림을 그린다면 나에게도 때가오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놓지 않았던 것 같아요. 솔직히 그게 언제일 지에 대한 불안감은 늘 가슴 속에 있었지만 설사 기회가 찾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뭐 어떠랴’ 싶었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작품활동을 시작해, 첫 개인전을 연 것이 2007년이었다. 첫 작품인 ‘관음리에서’가 완성되고도 10년만이었다. 그나마도 전시된 작품이 모두 15점뿐이었다고 하니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녹녹치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첫 개인전에 오신 분들이 ‘왜 가게들이 쓸쓸해 보여요? 왜 다 겨울이에요? 나무가 왜 앙상해요?’라고 물으셨어요. 그러고 보니 정말, 겨울 풍경만 있더라고요. 가족에게 충실하며 나름으로 열심히 살았지만 ‘이미경’이라는 제 이름 석 자를 잊고 있었던 거죠. 그 아쉬움이 제 내면에는 그림자를 남겼던 것 같아요.”
요즘은 일주일 내내 찾아다녀도
기억에 남을 만한 구멍가게는 열손가락에
꼽을 정도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경 작가는 다시 길을 나선다.
깊은 골목골목 숨어 있어 발견하지
못했을 뿐, 아직도 구멍가게들이
남아 있으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따뜻해진 시선으로
다시 찾아 나설 풍경들
“제 그림을 보는 분들이 좀 더 따뜻함을 느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표현도 따뜻해지기 시작한 것 같아요. 따뜻한 그림을 그리니까 저도 덩달아 밝아졌어요.”
실제로 해를 거듭할수록 이미경 작가의 작품은 따뜻해졌다. 앙상하던 가지에는 노란색 은행잎이 풍성해지고 감나무에는 붉은 감이 주렁주렁 달렸다. 수북하게 흰눈을 뒤집어쓴 한겨울의 나무 꼭대기에도 둥지가 있어 한결 포근해 보인다. 가게 문 앞의 빈 의자, 마당 한가운데의 널찍한 평상을 보면 쉬어가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긴다. 미처 화폭에 담으려고 생각하지 못했을 뿐 대부분은 구멍가게가 원래 지니고 있던 것들이었다고 한다. 작가의 마음이 따뜻해지고 여유가 생기면서 생긴 변화들이었다.
작품 속 구멍가게는 상상 속의 공간이 아니다. 실제로 그의 작품활동은 전국에 산재해 있는 구멍가게를 찾아나서는 일로 시작된다. 그런데 세월이 갈수록 구멍가게들을 찾기가 힘들어졌다고 작가는 말한다. 10여년 전만 해도 일주일 정도 전국을 누비면 50군데 정도는 만날 수 있었지만, 요즘은 일주일 내내 찾아다녀도 기억에 남을 만한 구멍가게는 열손가락에 꼽을 정도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경 작가는 다시 길을 나선다. 깊은 골목골목 숨어 있어 발견하지 못했을 뿐, 아직도 구멍가게들이 남아 있으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대학시절에 강원도 정선에 간 적이 있어요. 그땐 구멍가게들이 눈에 들어오던 시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사진에 담아둘 생각도 못했던 곳들이 자꾸 눈에 밟히네요. 지금이라면 놓치지 않았을 곳들인데 아쉬워요. 이번 전시회가 끝나면 강원도 쪽으로도 다시 발길을 돌려 봐야겠어요.”
작가의 눈이 따뜻해지면서 새롭게 눈에 들어오는 것이 늘어났다. 게다가 요즘은 ‘사라져가는 주조장을 지켜달라’, ‘사라져가는 약방을 지켜달라’는 요청도 이어지고 있다.
“예전에는 제가 구멍가게를 그린다고 구멍가게를 지킬 수 있을까 회의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작품을 통해 사람들이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거두지 않는 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경 작가가 전하는 ‘펜화 입문’을 위한 조언

01 | 수를 놓듯 느긋한 마음으로 시작하세요
겹겹이 선을 긋는 펜화는 손 노동과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조바심을 내면 금방 지쳐서 펜을 놓게 됩니다. 수를 놓듯 느긋한 맘으로 하세요. 엉덩이의 힘이 절대로 필요한 작업이니까요. 얼마나 오래 선을 긋고 표현하려는 대상과 이미지를 담으려 애썼는 지에 따라 작업의 결과물이 달라져요.

02 | 일단 시작하세요
‘그런 말은 누가 못해, 비법을 알려달라’고 하시는 분들에게는 작은 드로잉북과 로트링 펜이나 잉크와 펜대, 펜촉을 사서 일단 무엇이든 그리라고 말씀드립니다. 한 권을 다 그릴 무렵이 되면 펜 선을 어찌 쓰면 좋을지 스스로 조금 아실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권수를 늘려가세요.

03 | 뭐든 즐겁게, 많이 그리세요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을수록 더 독창적인 그림이 나올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세요. 그림은 무언가 표현하려는 기본적인 욕구이며 수단입니다. 그래서 그리는 시간만큼은 행복해야 합니다. 뭐든 즐겁게 많이 그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