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에서 키우던 커피나무가 농장이 되기까지
“누구나 새로운 삶을 살아보면 어떨까 고민하죠. 제게 움직일 수 있는 힘만 있다면 공원 벤치에 앉아서 소일을 하거나 하릴없이 장기판에 끼어 훈수를 두는 삶은 살지 않겠다는 것이 평소의 막연한 생각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막연한 생각일 뿐.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 커피 농사꾼이 되겠다는 계획은 더더욱 없었다. 오지탐험 전문기자로서 히말라야 트레킹, 안나프루나-로체 등정 등을 하던 그였기에 주변 사람들은 커피 농사꾼이 된 그를 낯설어한다. 커피 농사꾼으로서 제2의 삶을 살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일이 계기가 되었다.
10여 년 전 취재 차 아프리카의 커피 농장에 갔다가 시음한 커피 맛 때문이었다. 평소에 커피를 즐기지 않던 그였지만 거기서 커피 맛에 푹 빠져버린 것이다. 좋은 커피 맛의 8할은 신선함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그때 씨앗을 몇 알 얻어왔어요. 설마 싹이 틀까 반신반의하며 베란다에 심었는데 거기서 싹이 났어요. 물만 주는 데도 무럭무럭 자라는 게 신기하더라고요.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몇 년 사이에 30그루까지 개체가 늘어났다. 베란다가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커가는 커피나무를 보며 편히 뿌리내릴 수 있는 땅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귀향을 결심했다. 평소에도 답답한 화분에 갇혀 자라는 식물들을 보기 안타까워 화분을 집에 두지 않는 사람이었다. 고향으로 내려가 소박하게 50평 남짓한 하우스를 짓고 베란다에서 자라던 커피나무를 옮겨다 심은 게 커피농장의 시작이다.
수없는 시행착오와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이겨내며
“아무래도 겨울나기가 가장 힘들었죠. 밤을 새워가며 비닐하우스 온도를 올리느라 별짓을 다해 봤습니다. 그때 얼어 죽은 아이들도 있었어요. 포기하고 싶을 때 많았죠. 준비가 덜 된 채로 내려와 내가 아이들을 사지로 몰아넣었구나 싶어 후회도 많이 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아이들’은 커피나무다. 씨앗부터 싹을 틔워 동고동락하던 커피나무는 그에게 자식이나 진배없다고 말한다.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포기하기 어려웠던 것은 살아남은 아이들이 ‘좀 더 노력을 해보라’고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이들 키우느라 기자 생활 하며 모아 두었던 돈들도 다 까먹었다’는 말도 농담이 아니다. 자금난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베란다에서 몇 년 키워보니까 ‘해볼 만 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주변에서는 농장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이었어요. 다들 미친 짓이라고 했죠. 기자 생활 하면서 몸에 밴 습관 중의 하나가 시작을 했으면 끝까지 가서 결론을 내린다는 것입니다. 시작도 안 해보고 지레 겁먹고 싶지 않더라고요.”
‘과연 될까, 쉽지 않을 텐데, 힘들지 않을까’라는 부정적인 질문들이 있었기에 기자의 뚝심으로 끝까지 가서 답을 찾아보고 싶었다. 그 결과, 아열대 기후에서 자라는 커피나무를 한국의 기후와 풍토에 적응시켜 튼튼한 나무로 키워내는 데 성공했다.
“단 하나도 싹이 나오지 않았을 때는 ‘이 길이 아닌가’ 싶기도 해요. 다 포기 하고 싶다가도 어렵사리 싹을 틔우고 올라온 아이들이 떡잎을 피울 때 그 모양이 나비를 닮았어요. 그걸 보면 내가 나비가 된 양 즐거워집니다.”
담양커피농장에서는 커피열매가 한 잔의 커피가 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체험해볼 수 있다.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른 시작입니다
그의 명함에는 담양커피농장의 커피농부이자 바리스타이자 향미전문가(MFC)라고 적혀있다. 커피농사를 준비하면서 함께 준비한 것이다. 늦은 시작이라 생각했겠지만, 세계 최고의 요리대학인 미국 CIA에서 향미전문가 교육과정도 마치고 자격증까지 땄다. 환갑이 넘으면 미각이 쇠퇴해진다는 편견을 깬 그다.
그는 시설하우스의 시험재배를 마치고 2년 전, 마침내 400평 규모의 현대식 하우스로 이사를 했다. 아이들도 잘 크고 있고, 양은 적지만 커피 생산도 시작했다. 담양군 금성면의 지명을 따 ‘골드 캐슬(Gold Castle)’이라고 근사한 이름도 붙였다. 그는 케냐 농장에서 맛본 커피처럼 신선한 커피를 선사하고 싶다.
“기자 생활을 할 때는 늘 긴장감을 느끼며 살았어요. 한번 실수가 치명적인 경우가 많아서 긴장감을 놓지 못했거든요. 사진기자들의 직업병이지요. 커피농장을 시작하고는 삶이 많이 바뀌었어요. 마음에 여유도 생겼지요.”
그는 요즘 커피나무 숲길을 산책하는 것으로 아침을 시작한다. 해 질 녘이면 노을빛을 받아 반짝이는 무성한 커피나무 잎사귀들을 바라보면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한 장면 속에 들어앉은 듯하다. 그 풍경을 보며 막걸리 한 잔을 걸치는 것, 모두가 늦었다고 말했을 때 그의 용기 있는 도전이 만들어낸 꽤 멋진 인생의 한 장면이다.
TIP. 임영주 대표가 말하는 ‘누구나 키울 수 있는 커피나무’ 5가지 방법

커피나무는 아프리카가 원산지인 식물이라 추위에 약하다.
겨울에 창문을 잠깐 열어두어도 치명적이다. 5℃ 이하로 내려가면 얼어 죽는다.
바깥 온도가 15℃ 이하로 떨어지면 거실에 들여놓아야 한다.

25℃ 전후의 온도가 가장 적당하다.
이는 사람이 가장 쾌적하게 느끼는 온도이기도 하다.

생각보다 생명력이 강해서 물만 주어도 잘 자란다.

여름에는 2~3일마다, 화분이 마를 정도가 되었을 때 물을 주면 된다.

흙은 물 빠짐이 좋은 흙을 고르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