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신나라 참고. 대한비만체형학회 외 다수
“맛이 예전 같지 않은데” 이 느낌이 정말 기분 탓이라면, 그리고 음식을 먹을 때 이런 감상이 반복된다면 내 미각의 기능이 제맛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아닌지 살펴보자.
요즘 입맛이 변했다는 생각이 든 적 있는가? 단골 음식점에서 늘 먹던
메뉴를 주문했는데 사장님의 솜씨나 요리법이 바뀌지 않았는데도 음식이
예전보다 덜 맛있어진 것 같다고 느낀 적은 없는가? 만일 요즘 내 미각에
묘한 이상이 의식된다면 우선 평소의 식습관을 되돌아보자. 달고 짠 음식을
매일 같이 즐기는 편이라면 갑작스러운 ‘입맛’의 변화가 미각둔화가 아닌지
의심해 보는 것도 좋다.
혀에는 여러 가지 맛을 감각하는 수천 개의 미각세포가 존재한다. 이
미각세포들은 혀에 촘촘하게 돋은 돌기 속에 뭉쳐있다. 음식을 먹으면
음식물이 혀의 돌기에 닿으며 맛을 느끼게 되는데, 미각둔화는 뇌가 맛의
종류와 농도를 다르게 감지하거나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약 45세를 전후로 자연스럽게 이 미각세포의 집합체인 미뢰의 수가
줄어들고, 그 기능도 저하되기 때문에 나이가 들며 경험하는 미각기능의
변화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기도 하다.
그런데 최근에는 노화와 관계없이 미각기능에 변화가 생기는 경우가 늘고
있다. 늘 먹던 대로 먹어도 맛이 예전 같지 않고, 자극에 둔해져 필요
이상으로 음식을 섭취하게 되는 등의 미각장애 현상이 20대와 30대
사이에서도 흔히 관찰되는 것이다.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 허기가 채워지고, 생존에 이로운 맛을 감각하면
엔돌핀이라는 물질을 통해 쾌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우리의 행동을
자극해 음식을 먹는다는 행위로 유도하는 물질은 도파민이다. 도파민은
어떤 행동이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지 판단하고, 다음에도 여러 가지
선택지가 주어질 때 나에게 가능한 큰 행복을 주는 행동을 고르도록
학습한다. 즉 행동에 대한 보상을 근거로 습관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것이다.
도파민 자체는 인간이 적극적으로 섭식행동을 하도록 유도해, 생존에
유리하게 해주는 이른바 꼭 필요한 자극이다. 그런데 단맛과 짠맛 등의
자극적인 음식은 뇌의 쾌락 중추를 자극해 도파민 분비를 활성화한다.
음식으로 높아진 도파민 수치가 또다시 도파민을 증가시켜 필요 이상의
음식을 섭취하는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다.
짧은 시간 동안 강한 자극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혀의 미각세포는 점차
기존의 맛보다 강한 맛에 반응하게 되는 ‘내성’이 생긴다. 미각은
둔해졌는데 뇌는 비슷한 수준의 자극을 요구하므로, 자연스럽게 필요한
양보다 많은 양의 음식을 섭취하게 된다.
특별한 원인 질환이 없는데도 맛에 둔감해지고, 특정한 맛을 끊임없이 추구하다 대뇌회로에 변화가 일어나는 ‘미각중독’은 미각장애 현상의 일종이다. 미각중독은 특정 음식을 먹는 행위를 자제할 수 없게 되는 음식중독과도 크게 결이 다르지 않다.
미각중독이란 명칭 그대로 특정 맛에 중독적으로 반응하며, 다른 맛에
대해서는 만족감을 좀처럼 느끼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미각중독을
일으키는 맛은 대체로 대뇌회로에 강한 인상을 줄 만큼의 강렬한 자극인
경우가 많다. 미각중독을 유발하는 대표적인 자극이 바로 단맛과 짠맛이다.
자극적인 음식은 “스트레스가 싹 풀려서 좋다”는 대중적인 인식이나,
‘단짠매력’ 등 긍정적인 어휘와 곧잘 결합되어 가볍게 여기기 쉽지만, 이
맛이 유발하는 미각중독 역시 중독의 일종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미각중독 현상은 맛 의존과 금단, 내성 등 우리가 다른 중독 증상을 설명할
때 곧잘 보는 단어들과 함께 사용된다. 미각중독에 빠지면 특정 맛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특정 맛을 원하는 만큼 섭취하지 못했을 때는
불안감이나 불쾌감 등을 느끼는 전형적인 금단 증상을 동반한다.
대뇌의 도파민 수용체는 단기적인 보상과 쾌락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미각중독에 빠지면 위험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늘 신체가 필요로 하는
양보다 많은 양을 섭취하게 되고, 음식을 먹는 속도도 빨라진다. 렙틴이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포만감의 신호를 줄 새가 없어지는 것이다. 달고
짠 음식은 대체로 고열량·고탄수화물인 경우가 많아 비만과 같은 각종
성인병과 대사질환을 유발한다.
중독을 일으키는 자극은 무리 효과를 가진다. 어떤 중독적 기제 하나가
활성화되면 다른 중독적 기제도 함께 활성화되는 것이다. 미각중독이 또
다른 중독을 불러오는 것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강한 자극에 익숙해진 내 입맛은 얼마든지 돌이킬 수 있다.
미각세포의 수명은 한 달 남짓으로, 그리 길지 않다. 달고 짠 식습관에서
벗어나 나의 미각을 본래의 민감도로 돌리는 데도 고작 한 달 정도가
걸리는 셈이다.
‘제맛이다’는 표현은 그 상황에 딱 알맞게, 어떤 행동이 이루어졌을 때
사용한다. 음식이든 물건이든, 행동이든 그 본래의 느낌을 가리켜 소위
제맛이라 하지 않나. 곧 제맛을 안다는 것은 그 대상의 진면목을 안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혹시 내가 미각중독에 빠진 것 같다면 모쪼록 물 한
모금 마시더라도 제맛을 아는, ‘안목 있는’ 미각을 가져보겠다며 마음을
다잡아보면 어떨까.
① 나의 상태 인지하기
미각중독은 평소의 학습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상태다. 어떤
음식을 먹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든다면 이 욕구가 일시적인
것인지, 반복적이고 습관적으로 발생하는 것인지 판단해 보자.
본인의 상태를 의식하는 것만으로도 미각중독에서 벗어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② 짧은 시간 참기
음식을 섭취하겠다는 의욕은 의외로 짧은 시간 안에 사그라드는
경우가 많다. 단 10분, 어렵다면 5분이라도 좋다. 특정한 맛이 참을
수 없이 당길 때 ‘10분만 기다려 보고, 그때도 먹고 싶다면 먹자’고
자신을 달래보자.
③ 식사 순서 바꾸기
‘먹고 싶다’고 느끼는 맛의 음식 대신, 입맛과 조금 동떨어진 음식을
먼저 섭취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미각중독을 일으키는 맛은 대체로
단맛이나 짠맛 등, 강한 자극을 주는 경우가 많으므로 신선한 채소
등을 먼저 섭취하며 입맛에 인내심을 주는 훈련을 시켜주자. 채소를
먼저 먹는 것은 충동을 한번 억제하는 것뿐만 아니라, 혈당이
가파르게 오르는 것도 방지해주니 일석이조다.
④ 식사 시간 정하기
식사 시간을 명확하게 정하고, 식사가 끝난 뒤에는 간식이나
주전부리를 섭취하지 않도록 개운하게 양치하자. 음료를 마신 뒤에도
가글이나 양치를 하는 등 ‘먹는다’는 행위에 분명한 마침표를
찍어두면 미각을 훈련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앞서도 말했지만,
미각이 새로운 입맛에 익숙해지는 데는 단 한 달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