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인터뷰

정소민, 비로소 나를 찾았다
번아웃 겪었던 20대 이젠 삶을 즐거움으로

배우 정소민

글. 이미영(조이뉴스24)
사진제공.이음해시태그, tvN

“내가 나를 너무 몰아붙이고 있는 건 아닐까 싶었던 적이 있어요.”

꿈을 찾아 발을 들인 연예계에서 정소민은 참 부지런히 달렸다. 스물 한 살의 나이에 <나쁜 남자> 주연을 맡아 화려하게 데뷔했다. 맑고 신선한 얼굴, 여기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 수석 입학이라는 이력이 더해지며, 여느 신인배우들에 비해 임팩트가 강했다. <장난스런 키스>, <아버지가 이상해>, <이번 생은 처음이라> 등에서 작품을 이끄는 주연으로 사랑 받았고, ‘로코퀸1’이라는 수식어를 꿰찼다. 수많은 성취를 달성하며 성공 가도를 달렸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번아웃을 겪으면서 자신을 돌아봤고, 지친 나를 보듬었다.

드라마 <엄마친구아들>에서 정소민은 자신과 꼭 빼닮은 석류를 만났다. 옆에서 토닥토닥 위로를 건네주고 싶었다. 행복한 미소를 되찾은 석류를 보며 “삶을 즐거움으로 채워가고자 했던 지난 날의 나를 돌아봤다”고 했다.

<엄마친구아들> K장녀2에 공감 “응원하고 싶었다”

최근 막을 내린 tvN 드라마 <엄마친구아들>은 오류 난 인생을 재부팅 하려는 여자 배석류(정소민 분)와 그의 살아있는 흑역사인 ‘엄마친구아들’ 최승효(정해인 분)가 벌이는 로맨스다. 정소민은 인생을 재부팅 하고 싶은 고장 난 엄친딸 배석류로 열연했다.

어릴 적 소꿉친구와의 티격태격 케미부터 ‘어른 연애’에 이르기까지, 로코퀸 정소민의 진가가 발휘됐다. 정소민은 자연스럽고 현실적인 연인의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 정해인과 많은 고민을 나눴다.

“처음에는 친해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낯을 가렸어요. 어느 순간 너무 편해졌고, 현장 분위기도 좋았어요. 캐릭터나 장면에 대해 아이디어를 많이 주고 받았죠. 만들어진 느낌보다는 현실 연애의 느낌, 케미를 살리고 싶었거든요. 상대 배우는 날 받아줄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과 신뢰가 필요한데, 그랬던 배우라 감사했고 신나서 할 수 있는 지점이었어요”

배우 이제훈

드라마 방영 중 두 사람의 열애설 해프닝도 있었다. 그만큼 드라마에서 잘 어울리는 커플 연기로 시청자들의 몰입감을 더하고, ‘실제로도 사귀는 것 같다’는 반응을 이끌어냈다. 정소민은 “열애설 후 어색한 건 없었다. 어색해지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나”라고 말하며 미소 지었다.

“이번 작품에서 유독 ‘케미’를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러브 라인을 잘 만들어보자는 하나의 목적을 향해 달려가다 보니 생긴 해프닝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작품뿐 아니라 상대 배우가 편하게 연기할 수 있도록 최대한 맞추려 노력하는 편이에요”

1. 로코퀸 : ‘로맨틱코미디퀸’의 준말로,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드라마 에서 흥행에 성공한 여자배우를 말한다.
2. K장녀 : 코리아(Korea)의 앞글자 ‘K’와 맏딸을 뜻하는 ‘장녀’의 합성어.

tvN 드라마 
            <엄마친구아들> tvN 드라마 <엄마친구아들>

정소민에게 <엄마친구아들>은 단순한 로코가 아닌,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 힐링작이었다. 수많은 캐릭터를 연기했지만, 석류를 ‘아픈 손가락’이라고 표현할 만큼 애정이 깊었다.

K장녀로서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책임감, 꿈을 위한 용기와 도전, 그리고 번아웃과 극복에 이르기까지, 정소민은 석류와 닮은 점이 참 많다고 했다. 먼저 그 길을 걸어간 ‘인생 선배’로서, 석류를 응원했다.

“석류는 장녀로서 지는 책임감과 부담감을 당연하게 여기다가 거기서 조금씩 자유로워져요. 저도 똑같이 장녀이고 부모님이 바라시는 것들을 이뤄드리고 싶은 마음도 컸는데, 그런 부분에서 많이 공감했어요. 엄마가 석류의 고군분투를 보며 안타까워하고 우셨어요. ‘내가 모르는 세계에서,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하면서 나에게 말 못할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석류에게서 너가 느껴져 마음이 아린다’고 했어요”

“번아웃 온 뒤 소확행 찾았다”

배우 이제훈

드라마에서 석류는 미국에서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돌연 한국으로 돌아왔다. 남들에게 보여지는 삶이 아닌, 진짜 자신을 찾고 꿈이었던 요리에 도전하는 여정이 그려졌다. 정소민은 그 선택에 공감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무용을 전공한 그는 배우의 꿈을 쫓았고 자신의 삶을 찾았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쉽지 않잖아요. 저는 무용이 좋아서 시작했지만 최종적으로 내가 더 사랑하는 일을 만난 게 감사해요. 내 판단을 믿은 과거의 나를 좀 칭찬해주고 싶어졌어요”

사랑해서 시작한 연기였지만, 너무 잘하고 싶은 욕심으로 자신을 몰아붙였다가 번아웃도 경험했다. 뒤늦게서야 연기 말고도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 둘 찾기 시작했다.

“앞으로만 계속 나아가다보면 나를 갉아먹어요. 너무 힘주고 달리다보니 파생되어 오는 힘듦이 있더라고요. 쉼도 중요한데 말이죠. 이십대 후반에 번아웃이 왔고, 삼십대 넘어가면서 편안해졌어요. ‘이제는 그런 것을 내려놓고 좀 더 즐겨보자’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내 삶을 채워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바로 번아웃이 극복되진 않았어요. 내 가치관에 변화를 주고 그것을 내 몸에 체화시키고 완벽하게 소화시키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해요. 그래서 방향을 잡아놓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마음먹고 보니 어느샌가 그 방향으로 가고 있더라고요”

정소민은 일상의 ‘소확행’을 찾았다. ‘조카랑 노는 것’, ‘드라마와 영화 몰아보기’, ‘클라이밍’, ‘독서’가 그에게 행복을 안기는 것들이다. 정소민은 “좋아하는 것이 많지는 않지만, 확실한 것이 있으면 그 개수가 적어도 괜찮다”며 “내가 무엇을 하면 좋아하고 즐거운지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웃었다.

대중의 눈에서 멀어지는 ‘공백’이 무서워 조급해질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 ‘쉼’조차 감사한 마음으로 즐기게 됐다. 무수한 실패에 불안함과 자격지심을 느끼기보단 성장의 동력으로 삼게 된다고도 했다. 15년차 배우의 여유다.

“예전에는 일이 없을 때도 뭔가를 배워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어요. 어느 순간부터 ‘내가 정말 좋아해서 하는건가, 아니면 멈춰있는 것이 불안해서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후자의 지분이 더 큰 것 같더라구요. 어느 순간 물흐르듯이 좋으면 하고, 쉬고 싶으면 쉬었어요. 참 많이 달라졌죠”

<엄마친구아들>을 끝낸 정소민은 “차기작이 찾아올 때까지, 당분간 쉬면서 제가 좋아하는 것들로 일상을 채워나가면서 충전을 잘하고 싶다”고 했다.

정소민은 “과거의 나는 성취가 중요했는데, 나의 편안함을 조금 더 우선순위에 두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미소 지었다. 정소민의 그 얼굴이 참 편안해보였다.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들 곁에서 꿈을 찾은 석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