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중독 분야 최초의 시도, 동료상담사의 의미
동료상담사는 도박중독 회복자가 교육과 훈련을 통해 상담사가 된 경우를 일컫는다. 자신의 회복 경험을 전파해 단도박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한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하는 것으로 국내 중독 분야에서는 최초로 시도된 사례다. 그 동안 중독분야에서 진행된 회복과정은 전문가가 주도하는 방식이라 당사자의 입장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강원랜드 중독관리센터에서는 같은 문제를 경험하고 회복에 성공한 단도박자야말로 도박중독자에게 새 삶을 권유하는 역할을 가장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해 2018년, 동료상담사 양성 프로그램을 추진했다. 그 결실로 현재 28명의 동료상담사가 도박중독자들의 회복에 힘을 보태기 위해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11월 마지막 날에는 가톨릭관동대학교에서 <2021년 KLACC과 함께하는 동료상담사 ‘마인드업 힐링’ 워크숍>이 진행됐다. 단도박 상태를 유지하면서 다른 도박중독자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들을 응원하고 힘을 주기 위해서다. 이날은 모래놀이 치료, 차와 함께하는 마인드 힐링, 가톨릭관동대학교 중독재활상담학과 방문 견학 등이 진행됐다.
자신의 내면과 만나는 치유의 시간
이날의 핵심 프로그램은 모래놀이 치료였다.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작업으로 모성을 상징하는 모래의 감촉을 느끼며 순수했던 나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모래놀이 치료에서는 장식장에 빼곡히 자리한 피규어 중 원하는 피규어를 골라 모래상자 위에 배치함으로써 자신만의 세계를 표현한다. 무의식 속에 숨겨둔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는 작업으로 문제 행동 등을 파악하고 스스로 치유하는 과정이다.
동료상담사들은 각자의 자리에 놓인 모래상자와 놀이 치료용 피규어가 전시된 것을 보며 호기심을 드러냈다. 모래놀이 치료 강사는 “어른들은 바쁘게 일상을 살다 보면 자신의 고민이나 문제를 무의식 속에 묻어둬요. 겉으로 표현하지 않죠. 우리의 무의식 속에 들어가서 진짜 나의 모습을 바라봅시다”라며 미리 준비해둔 신형건 시인의 시 「가끔」이 적힌 유인물을 나눠줬다. 무의식으로 들어가는 작업은 오래 걸리기 때문에 동료상담사들이 좀 더 쉽게 몰입해 내면의 어린 자아와 만날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준비한 것이다. 시를 읽은 후 동료상담사들은 추억에 빠져든 모습이다. 시의 내용이 공감되고 울컥했다는 반응도 있고,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렇게 조금씩 무의식으로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모래놀이 치료를 시작했다. 동료상담사들은 모래상자 안의 모래를 만지기도 하고, 모래성을 쌓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후 한 두 명씩 원하는 피규어를 골라 모래상자 안을 채워나갔다. 동물 피규어만 가져오거나 천사 피규어만 전시하고, 꽃을 골라 모래상자를 꾸미기도 했다. 그렇게 완성된 작품에 제목을 붙이며, 온전히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휴양지 느낌의 집에 엄마와 자신의 모습을 표현한 동료상담사는 “평화를 누리고 싶은 마음을 표현했어요. 엄마에게 순수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엄마가 보고 싶네요”라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동료상담사들은 내면의 동심의 세계를 마음껏 표현하며 웃음과 눈물이 공존하는 시간을 가졌다.
- 신형건 <가끔> 中 -
늘 그런 건 아니지만 가끔
빨간 불이 켜져 있는데 길을 건너고 싶어.
가끔 학교에 가기 싫을 때도 있고
일부러 숙제를 안하기도 해.
갑자기 나보다 덩치가 큰 뚱보한테
괜히 싸움을 걸고 싶고 가끔
아무런 까닭 없이 찔끔 눈물이 나.
…중략…
어쩌다 엄마가 너무 잘해주는 날이면
퍼뜩, 난 주워 온 아이라는 생각이 들고
집을 뛰쳐나가고 싶기도 해.
그래서 아무데고 막 가보다가도
결국은, 나도 모르게 우리 집으로
발길을 돌리곤 하지
가끔, 아주 가끔.
마인드업 힐링으로 한층 더 성장한 사람들
모래놀이 치료 이후에는 모래를 이용한 향초 만들기가 이어졌다. 향초를 만들 병의 바닥에 양면 테이프로 심지를 붙이고, 색색의 모래를 넣은 후 장식을 올렸다. 동료상담사들은 핀셋으로 장식 하나하나를 올리며 정성을 다했고, 서로가 필요한 장식을 찾아주는 등 훈훈한 모습을 연출했다. 그 다음에는 장식 위에 블랙체리 향을 넣은 젤을 부어 마무리했다.
모래놀이 치료 후 이어진 중독재활상담학과 방문을 통해 동료상담사로서의 사명감과 의지를 다진 참가자들은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선민 씨(가명)는 “모래놀이 치료가 마음을 정화시켰어요. 우리의 계절은 겨울이지만 봄이 온 것 같은 따뜻한 느낌이 들어요”라는 소감을 전했다. 또 다른 동료상담사 영희 씨(가명)는 기대 이상으로 좋은 프로그램이었다면서, 엄청난 만족을 느꼈다고 말했다. 워크샵을 통해 한층 더 단단한 내면을 갖게 된 동료상담사들의 멋진 활약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