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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씨는 수년 전 스포츠 도박으로 약 8천만 원의 빚을 졌다. 부모님의 도움으로 상당 부분 갚았지만 아직도 가족에게 말하지 않은 빚 1천만 원 정도가 남았다. 그래도 J씨는 예전처럼 도박을 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 재테크를 위해서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 혼자 판단하면 안 된다는 합리화를 하며 리딩방에 들어가서 처음에는 많은 돈을 땄다. 하지만 또 다시 빚을 지게 되었다. 투자를 하다가 실패할 수도 있는데 가족들이 또 도박을 했냐고 하니 속상할 뿐이다.

빠른 도파민의 기억으로 돌아가고 싶은 본능

우리 뇌에는 보상회로가 있다. 도박에서 이길 경우에 보상회로에서 도파민이 엄청나게 분비되면서 순간적인 활성화를 겪는다. 이 보상회로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얻거나, 운동을 해서 살을 빼는 것 등 일상 생활에서 노력을 통해서 어떤 성취를 할 때도 활성화된다. 즉 보상회로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며, 우리가 의욕을 갖고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이다. 다만 도박을 통하면, 일상적인 보상에 비해서 훨씬 적은 노력으로 빠른 보상을 얻기에 문제다. 똑같은 결과에 대해서 노력을 기울이기 보다는 우연에 기대게 된다.
쉬운 길을 알고 있는데 굳이 어려운 길로 가고 싶지 않은 심리다. 사실 운동으로 도박에서 얻는 쾌감을 느끼려면 마라톤 정도의 거리는 뛰어야 한다. 마라톤은 하루 아침에 뛸 수 있는 게 아니라 1km, 5km, 10km씩 점점 늘려가며 연습해야 한다. 그렇게 힘든 길을 택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일상의 느린 도파민에 만족하지 못하고 빠른 도파민의 기억으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J씨는 도박중독에서 회복된 듯했지만, 사실은 다른 형태의 도박에 빠지고 말았다. 도박에서 진 빚에 부담을 느끼는 것은 이해한다. 스스로 갚는다면서, 투자를 시작하는 일은 굉장히 흔하다. 하지만 쉽고 빠르게 보상회로를 활성화하는 뇌의 습관에서 회복하지 못한 채 주식이나 암호화폐 투자를 시작하는 것은 위험하다. 베팅을 하고 빨리 결과를 보려는 성향이 남아있는 상태라면, 가치 있는 기업에 투자한다는 주식 투자의 본질을 벗어나기 쉽다. 도박중독에 빠졌다가 주식 투자를 하는 사람이 워런 버핏이나 피터 린치의 책을 읽으며 공부하지는 않는다. 테마주, 작전주 등에 몰입하거나 선물, 옵션 등에 손대고, 단타 위주의 도박적인 방식으로 주식 투자에 접근하기 때문에 잃는 경우가 더 많다. 도박 빚을 갚으려는 좋은 의도로 포장하기에는 더 많은 빚을 남기고 투자를 끝내는 경우가 많다.

힘든 일이 가득한 세상으로 나와야

사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사람 사이의 갈등도 있고, 노력해도 안 되는 일도 많다. 그런 좌절을 겪는 것이 훨씬 더 건전한 삶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독된 뇌는 그 과정을 견딜 수 없다. 빨리 성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불안하기 때문이다. 기다리는 것은 지루하고 힘든 일이다. 그런 지루함을 견디지 않는다면, 계속 불안하고 초조한 채로 빨리 결과를 얻는 것에만 내 시간과 돈을 베팅할 수 밖에 없다.
도박을 계속하면 그런 현실을 대면하지 않아도 된다. 빚을 갚겠다는 핑계가 주식 투자의 명목으로 얼마나 좋은가? 하지만 실제로 돈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깨닫고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일상의 괴로움을 잊고 거기에만 완전히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앞에 닥친 문제를 한 번 더 회피하는 것이다.
추심 전화가 와도, 빚으로 친구 관계가 틀어져도, 직장에서 경고를 받아도, 이번 투자만 성공하면 모든 것이 쉽게 해결될 것 같다. 하지만 쉽게 져버린 빚과 도박으로 인해 생긴 문제들을 어렵게 해결하는 그 과정이 바로 치유다. 부모님이 빚을 대신 갚아주면 회복을 하기 어려운 것도 그 까닭이다. 중독에서 벗어나 진정한 치유를 하려면 이 세상의 문제에 직접 맞서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해결해주면 과정이 생략된다. 어렵고 힘든 과정을 모두 생략해버린다면 당장은 편하겠지만 뇌는 어색하다. 겨울에서 바로 여름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여름으로 가는 과정을 직접 겪어야 한다.
하루에 2천만 원을 따봤는데, 정말 아끼고 아껴서 100만 원씩 모으면 겨우 2년 만에 그 돈을 갚을 수 있는 이 세상이 아마도 힘들 것이다. 도박을 조절할 수 있다고 믿는 것도 마찬가지다. 도박이라는 재미있고 나쁜 친구를 가끔이라도 만나고 싶지, 완전히 헤어지기는 싫기 때문이다. 조절하겠다는 것은 예전의 도박 없던 세상 또는 지금의 도박 관련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세상으로 완전히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의미다.
도박을 완전히 끊은 후 대면해야 되는 새로운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인가? 인터넷 게임을 하루 종일 하거나 초 단위로 움직이는 주식창을 들여다보거나, 자다 일어나서 암호화폐 거래소를 들락날락하면서, 과연 도박을 끊었다고 할 수 있을까? 내가 피하고 싶은 것을 부정하지 않고 당당히 맞설 때 도박을 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