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함께하는 단도박 회복자들의 시간
한 차례 시원하게 쏟아진 빗줄기가 지나간 자리, 밝은 햇살이 고개를 내밀었다. 해발 1,200m의 매봉산과 단풍산 자락에 자리잡은 하이힐링원에도 따사로운 햇빛이 내리쬔다. 2019년에 문을 연 하이힐링원은 강원랜드가 설립한 산림힐링재단으로 체계적인 산림교육치유서비스, 산림의 치유 인자를 인문예술 분야와 접목한 행위중독 예방 및 치유서비스, 심신의 안정을 도모하는 힐링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익사업기관이다. 120여 명이 투숙할 수 있는 규모의 객실과 컨퍼런스 홀, 식당, 요가실과 명상실, 예방 및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할 4개의 테마동, 다양한 수목과 꽃으로 조성된 경관단지, 숲 체험시설 등을 갖췄다.
지난 5월 26일에는 하이힐링원에서 KLACC의 ‘재발방지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단도박을 결심한 회복자들이 프로그램을 통해 자기조절능력을 향상시키고, 지속적인 심리적, 신체적, 영적 성장이 가능하도록 격려하고 지지하는 자리다. 기존에는 2박 3일 프로그램으로 진행됐지만, 코로나19로 숙박 프로그램의 운영이 어려워져 당일 프로그램으로 변경됐다. 단도박은 본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단도박자들이 서로의 경험과 희망을 공유하며 공통된 문제를 해결하고, 회복을 돕는 과정도 필요하다. 이에 KLACC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단도박 회복자를 돕고, 그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도박중독 재발방지는 힐링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날 진행된 ‘재발방지 프로그램’은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시작으로 소도구 테라피, 쿠킹 클래 스, 도박중독 예방 연극 관람으로 이어졌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9명의 단도박 회복자들은 기대를 가득 품은 채 하이힐링원 내 산수원으로 이동했다.
첫 프로그램은 ‘소도구 테라피’다. ‘밸런틱’으로 불리는 긴 소나무 막대와 플랫도구를 활용한 힐링 테라피로 혈액순환은 물론 굳어 있는 근육을 풀고, 체형을 바로 잡는 과정이다. 몸에 공간과 여유가 생기면 마음도 편안해지기에 스트레스가 줄어드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요가매트에 앉은 회복자들은 강사의 설명에 따라 관절 등을 가볍게 풀면서 몸 전체를 스트레칭하는 시간을 가졌다.
숨 고르기부터 머리에서 발끝까지 스트레칭을 반복하면서 회복자들의 얼굴도 점점 더 편안해졌다.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며 힐링을 경험하는 시간이다. 통유리창 너머로 자연을 바라보며 몸과 마음의 감각을 느끼는 순간은 회복자들에게 힐링 그 자체였다. 희원 씨(가명)는 “평소에 스트레칭을 안 했는데, 직접 해보니 제 몸 구석구석이 살아 숨쉬는 느낌이에요. 젊어지는 것 같은데요?”라며 크게 만족했다. 다른 회복자들도 몸과 마음이 맑아지는 것을 느끼며 프로그램을 마쳤다.
소도구 테라피 이후에는 점심식사를 하며 휴식 시간을 보냈다. 온통 초록빛으로 물든 하이힐링원의 풍경 속에서 모두가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평소에 스트레칭을 안 했는데,
직접 해보니 제 몸 구석구석이 살아 숨쉬는 느낌이에요.”
몸도 마음도 힐링의 기운으로 충전!
오후 첫 프로그램은 쿠킹 클래스로 진행됐다. 이날의 메뉴는 달콤한 ‘크레페’다. 밀가루 반죽을 얇게 부치고, 그 위에 속재료를 얹어 싸먹는 프랑스 요리로 어떤 속재료를 넣느냐에 따라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다. 밀가루, 달걀, 초콜릿, 견과류 등 다양한 재료가 놓인 작업대 앞에 선 회복자들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이번 쿠킹 클래스는 더욱 특별했다. 강사로 참여한 재현 씨(가명) 역시 오랜 기간 동안 몰두했던 도박을 그만두고, 단도박을 유지하며 제과제빵 자격증을 취득한 회복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가 함께 요리하는 것도 좋지만, 맛있는 음식을 만들면서 제 단도박 경험, 재기의 과정 등을 함께 공유하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습니다.”라며 회복자들을 격려했다.
본격적인 쿠킹 클래스 시작! 3인 1조를 이룬 회복자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반죽이다. 준비된 밀가루에 달걀 4개를 넣고, 우유를 넣은 다음 거품기로 휘젓는다. 재료들이 잘 섞이도록 가능하면 많이 저어주는 것이 포인트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라며 장난 섞인 간섭이 오가는 가운데, 모든 회복자가 사이좋게 순번을 정해 돌아가며 휘저었다. 이후에는 잘 섞인 반죽에 녹인 무염버터를 넣고 체에 거른 후 호일을 덮어 30분 정도 냉장고에 보관했다.
다음은 토핑 재료를 준비할 차례다. 준비된 생크림에 설탕을 적당량 넣고 또 한 번 저어준다. 생크림이 조금 단단해질 때까지 저어야 하는데, 이게 가장 어려운 과정이라고 한다. 회복자들은 힘든 과정을 잘해내겠다는 듯 서로를 응원하며 크레페용 생크림 만들기에 집중했다. 열심히 생크림을 휘젓던 미영 씨(가명)는 옆 팀의 생크림을 보고 “저 집도 다 됐네~”하며 좀 더 속도를 올린다. 다 된 생크림을 잠시 냉장고에 넣은 다음, 먼저 보관했던 반죽을 다시 꺼냈다.
이제 반죽을 구울 시간이다. 종이처럼 얇게 반죽을 부쳐야 한다는 강사의 말에 여자 회복자들은 자신감을 보였다. 저마다 자신이 ‘부침개 선수’라며 각자의 노하우를 발휘하는 모습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린다. 예쁘게 부친 반죽이 하나 둘 늘어나고, 생크림을 얹은 반죽에 원하는 토핑을 마구 얹어주면 완성! 꽤 그럴싸한 디저트를 만들고 나니 회복자 모두 어느 때보다 밝은 모습이다. 만드는 즐거움, 먹는 즐거움을 골고루 느끼며 또 하나의 힐링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진수씨(가명)는 “집에서 요리를 해볼 일이 없었는데, 지인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라는 소감을 남겼다.
마지막 프로그램은 도박중독 예방 연극 관람이다. 컨퍼런스 홀로 자리를 옮긴 회복자들은 지역주민과 회복자가 만든 ‘극단 광부댁’의 연극 <사북오거리 황금식당>을 관람했다. 택시운전사로 일하면서 주민들에게 기타를 가르치고 있는 전직 기타리스트이자 단도박자인 ‘우식’의 이야기로 단도박자와 지역민 사이의 갈등과 화해를 그렸다. 회복자들은 우식의 처지와 상황에 깊이 공감하며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모든 프로그램이 끝난 후, 단도박 회복자들은 다음을 기약하며 자리를 떠났다. “하이힐링원에 오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자연은 그 자체로 순수하니까요. 많은 걸 느끼고 배우고 가네요.” 이날 프로그램에 함께 했던 윤미 씨(가명)의 말처럼 모두가 힐링의 기운을 가득 얻은 채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단도박 회복자들의 진정한 행복과 치유재활, 안정적인 사회복귀를 위해 노력하는 KLACC의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하이힐링원에 오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많은 걸 느끼고 배우고
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