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을 유발하는 결정적 환경
중독에 빠지기 쉬운 상황을 설명할 때 참고할 만한 유명한 연구 가 있다. 첫 번째는 캐나다 심리학자인 Bruce K. Alexander 박사 (1939~)의 ‘쥐 공원 실험(Rat Park experiments)’이고, 두 번째는 정신건강의학자인 Lee Nelkin Robins 박사(1922-2009)의 ‘베트 남 참전군인 약물문제 실태조사’이다. 두 연구 모두 1970년대에 수행된 고전적 연구로 유사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는데, ‘친밀감과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주변 사람들과 단절되는 사회적 고립 상황 이 중독을 유발하는 결정적 환경’이라는 것이다. 먼저 Alexander 박사의 연구를 살펴보자. 그는 ‘우리(cage) 속’ 고 립된 환경과 ‘공원 속’ 관계가 유지되는 환경에 실험쥐를 넣고 두 환경 속 쥐들에게 마약이 든 물을 마실 기회를 제공한 후 어떤 반 응이 나타나는지 관찰했다. 일정 시간이 지난 후 고립된 환경 속 쥐들은 대부분 마약을 탐닉 하는 중독 행동을 보인 반면, 공원 속 쥐들은 마약의 맛을 봤음에 도 불구하고 마약이 든 물을 반복적으로 마시지 않았다. 비록 쥐를 대상으로 한 연구지만, 이 실험이 중요한 이유는, 중독 문제의 발생에 ‘환경’의 영향력이 ‘뇌’의 영향력 이상이라는 점을 확인시켜 줬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살펴볼 Robins 박사의 연구는 실제 마약에 중독된 사람 들을 대상으로 수행된 것인데, 바로 베트남전 참전 군인에 대한 실태조사에서 확인된 것이다. 참혹한 전쟁터에서 마약에 중독되 었던 군인들을 본국으로 송환한 후 이들을 돕기 위한 기초 작업으 로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는 놀라웠다. 이들의 다수가 아무런 전문적 서비스를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가족 품으로 돌아왔다는 이유만으로) 더 이상 마약을 찾지 않고 지 낸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연구 역시 중독 문제 발생 및 회복에 환경 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동료를 잃고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당 하는 전쟁터에서 마음 기댈 곳이 없어 중독 대상에 의지하던 이들도 따뜻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자 더 이상 중독 대상이 필요치 않게 된 것이다.
캐나다 심리학자 Bruce K. Alexander 박사 연구 쥐 공원 실험. 케이지(좌) 공원(우)
기본심리욕구와 중독의 관계
지금까지 언급한 환경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외상 수준의 스트레스 환경’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안전이 지속적으로 위협당하거나 관계 가 단절된 환경을 말한다. 그리고 이런 스트레스 환경은 극단적인 수 준도 문제지만, 그 보다 덜한 일상적 수준이라 하더라도 그 빈도가 잦고 오래 지속되면 중독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와 같은 환경을 견디기 힘들어 하고, 그 고통을 잊기 위해 위험한 중독 대상을 활용하기까지 하는 걸까? 그것은 안 전하다는 느낌을 지속적으로 받고 싶어 하는 욕구와 타인과 관계를 맺고 어딘가에 소속되며 이해받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 욕구인 ‘기본 심리욕구’ 때문이다. 모든 사람의 몸속에는 동일한 기관이 존재하듯 사람의 마음속에도 ‘욕구’, ‘정서’, ‘인지’라는 공통 구성요소가 존재하 고, 각 요소가 역할을 하며 행동을 만들어 낸다. 신체가 정상적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각 기관이 적절히 기능해야 하는 것처럼, 마음 역시 그러하다. 그 중에서도 ‘욕구’는 마음을 이해 하는데 가장 핵심적인 요소로 인간의 심리적 성장 및 건강, 안녕을 위 한 기본적인 자양분을 담당한다. 즉, 신체가 건강하게 제 기능을 다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공급되어야 할 ‘필수 영양소’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심리적 생존과 기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필수 욕구가 있다. 이를 ‘기본심리욕구(안전, 관계성, 자율성, 유능성)’라고 부른다. 우리는 이 욕구가 좌절되는 상황이나 사건을 바로 스트레스 상황 혹은 사건으로 인식한다. 따라서 앞에서 설명한 중독의 위험성을 높이는 상황 또는 환경은 결 국 기본심리욕구의 결핍이 지속되는 상황 또는 환경을 말하며, 그 중 에서도 특히 안전욕구와 관계욕구의 결핍이 중독 문제 발생에 중요 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본인뿐만 아니라 소중한 누군가를 중독 문제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심리사회적 환경을 만들고 싶다면, 마음의 필수 영양 소인 기본심리욕구가 결핍되지 않도록 살펴야 한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적극적으로 욕구를 채워가는 노력을 해야만 한 다. 이를 위해 안전욕구와 관계욕구를 중심으로 기본심리욕구를 채 우기 위한 간단한 가이드를 제공하면 다음과 같다.
본인뿐만 아니라 소중한 누군가를 중독 문제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심리사회적 환경을 만들고 싶다면,
마음의 필수 영양소인 기본심리욕구가 결핍되지 않도록 살펴야 한다.
- 안전욕구
- 과거에 여러분의 안전을 위협하는 그 어떤 일이 일어났었다 하더라도, 적어도 지금 여러분이 있는 곳과 여러분이 상대하 고 있는 사람들은 안전하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말해주는 것 을 반복하면 안전욕구를 채울 수 있다. 즉, 지금 이 글을 읽는 순간 잠시 글을 읽는 것을 멈추고 찬찬 히 주변을 돌아본 후 ‘지금 이곳은 안전해!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은 안전해!’라고 스스로에게 조용히 말해주면 된다. 만약 실제로 여러분이 안전한 곳에서 안전한 사람들과 함께 있다 면 이미 안전욕구를 채우고 있는 것인데, 그것을 의식적으로 스스로에게 확인시켜주면 욕구 충족의 효과가 배가 된다.
- 관계욕구
- 소수라 할지라도 타인과의 친밀한 관계를 통해 소속감과 친 밀감을 경험하면 관계욕구를 채울 수 있다. 이를 위해 이해와 사랑을 받는다는 느낌을 제공해줄 수 있는 신뢰관계를 만들 고 그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기억할 것은 그 관계를 맺는 대상과 일상의 소소한 대 화를 나누거나 차 한 잔, 밥 한 끼를 먹는 순간순간 마다 그 관계를 의식하는 것이다. ‘나를 이해해주고 지지해주며 사랑 해주는 사람과 함께 이 순간을 보내니 따뜻하고 좋구나!’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