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의 기쁨

농장을 찾아간 날은 마침 봄에 심은 감자를 수확하는 작업이 한창인 때였다. 검은 흙 도랑 사이로 동글동글 예쁜 감자알들이 소복하니 쌓여있었다. 참가자들은 캐낸 감자를 모아 수확차에 옮겨 담느라 연신 굵은 땀방울을 훔치고 있었다.
“감자며 옥수수 등은 공동으로 작업을 하고 있고요, 양배추나 상추, 고추, 토마토와 같은 푸성귀들은 조별로 농사를 짓고 있어요. 특히 푸성귀들은 조별로 이름이 붙어있다 보니 더 높이 키우고, 더 많이 수확하려고 은근한 경쟁도 일어나요. 가을 평가회 때에는 소정의 상품을 증정한다고 했더니 다들 열성적입니다.” 농장의 주인이자 강사로 활동 중인 나동주 씨가 말을 이었다.
“참여하신 분들 모두 농사 경험이 없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감자가 나무에 달린다고 생각했던 분도 있더라고요. 하지만 지금은 다들 쑥쑥 자라는 작물들을 보면서 얼마나 신기해하고 재미있어 하시는지 몰라요.” 다들 농사를 짓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며 자랑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MINI INTERVIEW

김성희 참가자(가명)
Q. 참가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카지노에 온 후에는 매일 마음이 허공에 떠 있는 상태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 상황이 지속되다가 어느 순간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그 때 전원주택을 하는 지인을 보면서 농사를 통해 보람과 성취를 느끼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요. 그러던 와중에 이 프로그램을 알게 되어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Q. 활동하시면서 느낀 소감을 말씀해주세요.
농사가 이렇게 힘든지 몰랐어요. 하지만 제가 직접 해보니 어려움이 있기에 보람도 크고, 농산물 하나하나가 참 귀하게 느껴집니다. 또 ‘함께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는’ 즐거움도 있어요. 가령 지난번에 옥수수를 심었을 때의 일인데요, 조그마한싹을 넓은 밭 가득 심으라는 거에요. ‘장화를 신고 밭고랑을 걷기도 힘든데, 이 작은 것을 가지고 여기서 저기까지 어떻게 심지’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서 심으니 어느새 너른 밭 가득히 푸른 모종이 들어찬 풍경을 볼 수 있었어요. 그 뿌듯함은 말도 못 해요.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나 행복했지요. 그런 과정에서 카지노에 가려는 마음도 많이 줄어들었어요. 흙을 밟다보니 마음도 건강해진 것 같아요.

Q.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은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안 해본 사람은, 저희가 느끼고 있는 보람을 알 수 없습니다. 하루 하루 커가는 작물을 지켜보고, 그것을 수확하여 주변 분들과 나눠 먹는 것이 정말 재미있어요! 저는 내년에도 이 프로그램에 또 신청할 거에요.



‘나’를 넘어 ‘남’까지 보듬는 정(情)

농사의 매력은 또 있다. 사랑 쏟아 기른 작물들을 수확 후 주변과 나누어 먹으며 또 다른 인연의 끈을 만들기도 한다. “수확한 작물은 집으로 가져갈 수 있어요. 그런데 그 양이 꽤 많아서, 혼자서는 절대 다 못 먹어요. (웃음) 이웃에 나눠주기도 하고, 그 동안 소식이 끊어졌던 지인들에게 보내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새로운 인연이 생기거나 이전의 관계가 회복되기도 해요. 그리고 복지관 등에 기부도 합니다. 도움을 받던 입장에서 도움을 주는 입장이 되니, 참가자들의 자존감 향상이 눈에 보일 정도입니다.” 행사를 진행하는 정석용 간사는 프로그램의 또 다른 장점을 이렇게 표현한다. 그러고 보면 이 프로그램은 ‘나’를 넘어 ‘남’까지 보듬는 정. 한아름 풍성한 먹을 거리만큼 몸도 마음도 그리고 헐거워졌던 이웃도 함께 채워주는 활동이다.

흙이 주는 ‘치유의 힘’

“카지노 안에서는 게임에 집중하느라 주변을 둘러볼 틈도 없었는데, 여기에서는 흙 냄새를 맡으며 주변의 푸르른 것을 보니까 마음이 정화되는 것 같아요” 참가자 김성희(가명) 씨의 말이다. 그 말처럼 흙에는 특별한 힘이 담겨 있다는 것이 프로그램 운영자들의 생각이다. “흙을 만지면 사람이 정서적으로 안정되죠. 또 작품을 키우기 위해 흘리는 건강한 땀은 건강한 일상생활과 연결되고요. 특히 한 생명을 기르고 수확하는 과정에 자신을 돌아보고 투영하게 되면,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을 회복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생명에 대한 존중으로 이어지지요. 그리하여 중독에 빠져 살아가야 할 의미를 잃었던 분들이,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새롭게 찾으시곤 해요. 더욱이 연간 30회에 걸쳐 장기적으로 지속하는 활동인 만큼 효과가 더 큰 것 같습니다.” KLACC 박영철 차장의 설명이다.

함께하는 수확의 즐거움

한여름 뙤약볕 아래 감자 캐기는 한참이나 진행됐다. 밭에 깔린 감자를 둔덕으로 가져와 상자에 담는 작업은 점심 시간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잠시 쉬는 시간에도 몇몇 참가자들은 주변에서 고춧대를 세우고, 잡풀을 제거하는 등 자신이 키우는 작물에 한 번이라도 더 손길을 주기 위해 힘을 썼다. 수확한 감자는 스무 상자가 넘게 나왔고 짬짬이 따낸 상추며 고추, 양배추 등 푸성귀들도 대여섯 상자나 됐다. 옷은 땀에 절어 푹 젖어 있었지만 참가자들의 표정은 한없이 밝았다.
수확을 마친 후 다함께 점심을 먹기 위해 이동했다. 땀을 흘린 후 식사는 당연히 꿀맛이었다. 힘이 되는 동료들과 함께여서 그 시간은 더욱 재미었었다. 점심 시간에는 공지가 있었다. 다음 주에는 옥수수 따기를 진행할 계획이란다.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는 참가자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함께 땀흘리며 생명을 키우는 작업 생명사랑 녹색치유농장 프로그램은 이렇게 올 가을까지 이어질 계획이다.

MINI INTERVIEW_ 프로그램에 도움을 주시는 분들

정석용 생명사랑협의체 간사

Q. 프로그램의 목적은 무엇인지요?
‘도박을 끊자’라는 구체적이고 명시적인 목적보다는 자연안에서 만남과 교류를 통해 치유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있습니다. 보통 도박에 중독되신 분들은 사람들로부터 고립되기가 쉬운 환경에서 지내고 계세요. 그런데 자연 가까이에서 여유로운 환경을 조성하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면 그 딱딱했던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경향이 있지요. 그리고 같은 일을 겪었던 ‘동지’들과 함께 하다 보니 서로를 끌어주고 의지하면서, 결과적으로 효과적인 단도박이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나동주 영농지도 강사

Q. 참여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농사 공부를 위해 참여한 농군학교에서 고구마 캐기를 하는 것을 보고 활동 교회에 농장 프로젝트를 제안한 것이 시작입니다. 프로젝트의 지속을 위해 매년 1,000평 내외의 땅을 대여하고 있고, 농사 경험이 없는 참가자 분들을 위해 농사법도 알려드리고 있습니다.

Q. 프로그램을 통해 느끼는 점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함께 작물을 키우다 보면 자연스럽게 참가자 분들이 고민을 말씀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사연들을 들었을때 제가 무슨 정답을 내 드려서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들어주는 것만으로 그분의 마음이 치유되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농사를 통해 많은 분들이 변화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농사를 돈으로만 생각하던 제 자신이 성장하는 것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노후를 의미있게 보내고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