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넉한 바다와 가족의 행복
바다는 언제나 여유를 준다. 답답한 도시, 좁은 아파트에 살다가 드넓은 수평선과 파란 빛깔의 바다를 보면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이 든다. 40년 넘게 살면서 그걸 모를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지만 가족들이 모두 모여 바다를 보러 나오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몇년 전 가을에도 남해에 엄마와 작은 딸을 데리고 왔었지만 큰 딸이 함께하지 못해 못내 섭섭했었다. 더욱이 대학입시로 바빠진 고3 큰 딸과 이제 고등학교에 갓 입학한 작은 딸까지 함께 시간을 내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엄마와 두 딸이 함께 떠날 수 있어 아빠는 정말 좋았다. 비록 1박 2일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가족과 함께 풍광 좋은 곳을 둘러볼 수 있고, 맛있은 음식을 함께 즐길 수 있어 더 없이 행복했다. 두 딸은 남해로 간다는 게 좋았다. 이번 여름에 제대로 여행을 다녀오질 못했는데, 풍광 좋은 곳으로 휴가를 간다고 하니 마음이 들떴다. 상주은모래비치에서 멋진 노을도 보고 싶었고, 독일마을에 가서 분위기 있는 사진을 담아 인스타에 자랑도 하고 싶었다. 가족은들뜬 마음으로 여정을 꾸렸다.
게임을 지속한다면
자신이 더 나쁜 상황에
처할 것 같았다.
우연히 자신의 거울을 보다
학원 강사인 아빠는 어릴 적 태백에서 자랐다. 때문에 근처 고한에 있는 카지노는 이미 돌아가신 부모님을 떠올릴 수 있는 고향과 같은 곳이자 좋은 놀이터였다. 강원도나 충청도 인근에 특강을 다니면서 잠시 고한에 들러 게임을 즐기는 것 자체에 대한 거부감도 없었다. 가끔은 엄마를 데리고 와 게임을 권하기도 했고, 돈을 따서 딸들에게 용돈을 주기도 했다. 그러면서 ‘한 달에 몇 번 스트레스 풀러 게임하는 게 뭐 어때!’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며 본인이 하는 일을 도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3년이란 시간이 지나면서 아빠는 점차 게임에 몰입해 갔다. 아니 서서히 도박에 중독되어 갔다. 게임장을 찾는 일이 잦아져 휴일은 물론 가족행사도 거짓말로 둘러대고 카지노에 갔고, 돈을 잃으면 밤늦게 집에 전화해 엄마를 다그쳤고 주변 지인들에게도 여기저기 손을 벌리기 일쑤였다. 심지어 40프로에 달하는 수수료를 제하고 전당포에서 핸드폰 소액결제를 받거나 자가용을 맡기고 돈을 빌려 카지노에서 밤을 새웠다. 엄마는 몇달 동안 생활비 한번 보내주지 않은 아빠와 다퉜고, 고등학생이 된 아이들은 며칠 씩 집에 오지 않는 아빠를 원망하며 엄마 눈치를 봐야했다. 하지만 아빠는 게임을 멈출 수 없었다. 그러던 중 게임장에 자주 다니며 알게 된 같은 또래의 사람에게서 아빠는 자신의 얼굴을 봤다고 한다. 그는 하룻밤에 천만 원을 날리고 새벽에 서울로 올라갈 차비가 없어 아빠에게 단돈 이만 원을 빌려달라고 했다. 건설회사 중견 간부인 그는 10년 넘게 카지노에 다니면서 10억이 넘는 돈을 날리고 부인과 별거하면서도 돈이 생길 때마다 게임장을 찾는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아빠는 게임장에서 그 사람이 게임하는 모습을 보면서 순간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무언가 쫓기듯 불안하고 초조해하는 모습을 보니 자신도 게임을 할 때 그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무서웠다. 그 길로 게임을 멈추고 새벽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몇년 간 자신이 게임을 통해 얻으려고 했던 바가 무엇인지 곰곰이 되짚어봤다. 분명 자신은 게임을 통해 돈을 벌 수 없었다. 게임을 지속한다면 자신이 더 나쁜 상황에 처할 것 같았다. 그래서 아빠는 KLACC의 전문위원을 통해 ‘본인 요청 출입제한제도’를 이용하기로 했다. 몇 달이나 1년 출입제한을 한다면 다시 게임장 출입을 시도할 것같아 두려웠다. 그래서 ‘영구출입금지’ 신청을 냈다. 올해 봄의 일이다.
그래서 ‘영구출입금지’
신청을 냈다.
올해 봄의 일이다.
예쁜 가족사진과 잊지 못할 순간
삼천포항에서 시작된 가족의 남해 여행은 독일마을, 편백 숲양떼목장, 상주은모래비치, 다랭이 마을까지 이어졌다. 두 딸들은 마치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마냥 셀카봉을 들이댔다. 그렇게 한참 사진을 찍다가 만족스럽지 않은 듯 아빠에게 카메라를 내밀며 예쁘게 찍어달라고 졸랐다. “우리 가족은 언제나 서로를 믿어요. 아빠가 언젠가 큰 결심을 하실줄 알았어요.” 큰 딸은 문득 이런 이야기를 한다. 언제나 아빠를 친구처럼 친근하게 대했지만 속으로는 아빠를 지지해주고 있었던 모양이다.
가족 사진 촬영 시간. 엄마와 조금은 서먹해보이는 아빠에게 사진기자가 좀 더 다정한 포즈를 요구하자 아빠는 다소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가족끼리는 원래 서로 믿어주는 거에요.”란다. 그래도 다정히 잡은 손에 아빠와 엄마의 입가에는 미소가 어린다. 두 딸들도 이런 두 사람을 보면서 “괜히 좋으면서!”, “이럴 때 손 한번씩 잡아보는 거에요.”라며 한 마디씩 거든다.
“한곳에 집중하면 누구도 못말리는 사람이라 어떻게 하라고 말을 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내심 아이들 아빠가 그쪽에 출입을 하지 않았으면 했어요. 봄에 그렇게 결정을 했다고 했을 때는 정말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어요.” 아이들에게는 살갑지만 엄마에게는 다소 무뚝뚝한 아빠. 그런 아빠를 엄마는 묵묵하게 지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빠는 가족들이 그런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는 말에 영구출입제한을 결정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족과 함께 이렇게 즐거운 시간을 많이 가져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2019년 여름 남해 여행은 예쁜 사진과 함께 가족에게 잊지못할 행복한 순간이 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