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 처음 찾아간 카지노에 얼떨떨해 하는 그에게 함께 간 친구들이 5만 원을 쥐어주었다. “이것 가지고 놀아라”라고 했을 때까지만 해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신기하게도 제가 돈을 따게 되었어요. 함께 간 친구들이 네 명이었는데 그날따라 모두가 꽤 큰 액수의 돈을 딴 겁니다. 덕분에 거하게 회식도 했어요. 우리는 흥분해 ‘이렇게 돈 따기가 쉬우면 힘들여 일할 필요가 있느냐’며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지만 진심은 아니었어요. 금새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으니까요. 그런데 그게 불씨처럼 남아있었던 것 같아요.”
2~3백만 원쯤은 하루저녁이면 딸 줄 알았어요
얼마 후의 일이다. 내일이면 월급날인데 직원 월급 줄 돈이 2~3백만 원 정도 부족했다.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당장 융통할 데가 마땅치 않았다. 왜 하필 그 순간에 카지노의 기억이 떠올랐을까.
“5만 원으로 꽤 큰돈을 땄던 기억이 그 때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지갑에 있던 몇십만 원을 가지고 무작정 카지노로 갔어요.”
2~3백만 원쯤은 하루저녁이면 금방 딸 줄 알았다. 그렇게 다시 카지노에 발을 들여놓은 것을 시작으로 한 달 사이에 수억 원을 날리고 말았다. 잃은 돈을 되찾아야 한다는 조바심에 가게도 처분하고 시골의 땅도 처분하고 카지노에 뛰어들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정말 순식간이었어요.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이미 자제력을 잃은 뒤였기 때문에 도박을 끊을 수가 없었어요. 도박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멸치잡이 배까지 탔으니까요.”
남들은 일주일도 못 버틴다는 멸치잡이 배를 몇 개월씩 타며 돈을 벌어 또 카지노로 달려갔다. 월급날이 가까워진다 싶으면 카지노 갈 생각에 마음이 들떠 있을 정도로 깊이 중독되어 있었다. 그렇게 악착같이 번 돈도 하루저녁에 탕진해버리는 삶의 악순환을 끊어내지 못해 차를 몰고 바다로 뛰어든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극단적인 선택에도 도박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었다.
도박이라면 신물이 올라와요
지용 씨는 카지노를 벗어나던 마지막 날을 기억한다. 2017년이었다. 그날도 어렵게 번 돈을 싸들고 들어갔다가 다시 빈털터리가 되어 카지노 밖으로 나왔다.
“그 순간, 도박이라면 신물이 올라올 정도로 끔찍해졌어요. 그게 어떤 경지인지 설명하기도 힘들지만 그 길로 클락에 찾아갔어요. 이전에도 클락의 존재는 알았지만 한번도 거들떠보지 않았는데 그날따라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나봐요. 거기서 김정희 전문위원을 만났어요.”
2002년, 장난삼아 시작된 발걸음이었으니 무려 15년만의 종지부였다. 그는 클락에서 심리상담은 물론이고 직업재활교육도 착실하게 받았으며 2017년 7월부터는 강원도 교직원 수련원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을 시작했다.
“클락에서는 살고자 하는 저에게 직업재활교육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자동차운전학원에 다니며 대형면허도 취득했고, 컴퓨터학원에 다니며 문서작성 능력도 키웠습니다. 40시간 동료상담사 양성 과정도 거쳤습니다.”
이런 성실함을 인정받아 올해 5월에는 시설관리원으로 채용되면서 정년을 보장받게 되었다. 단도박을 시작한 지 올해로 3년차에 접어들었지만 지용 씨는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있다. 생활의 주변에 만연해 있는 도박의 유혹이 적지 않은 탓이다. 이런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긍정적 생각’이라고 한다.
“도박 때문에 내 인생을 망쳤다는 식으로 비관하면 절대로 도박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돈만 생기면 다시 도박장으로 달려갈 테니까요. 잃은 돈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는 앞으로 남은 삶의 소중함을 생각하며 살고 싶습니다.”
그는 요즘 지난 삶을 돌아보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난 시간을 되짚으며 도박에 빠져 잃어버린 15년의 빈 공간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 본 칼럼은 KLACC을 통해 단도박에 성공한 사례자의 이야기를 모티프로 재구성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