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가진 것들의 소중함

“봄이 오니 꽃 손질하느라 바쁘네요!” 따스한 미소를 머금은 나태주 시인이 건넨 첫마디였다. 풀꽃문학관은 나태주시인이 시를 통해 일반인들이 문학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만드는 공간이자 소통의 공간이다. <클樂>의 취재진을 반기듯 시인이 손질하던 노란 복수초가 빼꼼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복수초는 햇빛이 있을 때는 활짝 피고, 햇빛이 없을 때는 오므려요. 햇빛이 예쁘다, 예쁘다 해주니까 피는 거지. 그렇게 며칠을 가요.” 시인의 말은 마치 시(詩)의 한 구절처럼 가슴에 와 닿았고, 저절로 복수초를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자세히 보아야 / 예쁘다
오래 보아야 /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풀꽃1’)


‘풀꽃1’은 오랜 세월 교사로 교단에 서다 보니 어느 순간 아이들이 사랑스럽지 않은 순간이 찾아왔고,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사랑스럽게 바라볼 수 있을까 고민하다 쓰게 된 시다.
“우리가 가진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알아야 해요. 부모와 형제 그리고 어쩌면 지루하고 따분할지도 모르는 일상까지…. 이런 것들에 대한 고마움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게 중요해요. 그런 소중함을 잃어버리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주변에 있는 작은 것들, 가령 햇빛이나 나뭇잎, 바람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의 안부 인사나 카카오톡 메시지 등을 통해 조금씩 행복을 찾아가면 좋겠어요. 그런 것들이 쌓여 아름다운 인생을 사는 거예요.”

이름을 알고 나면 /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 나면 / 연인이 된다
아, 이것은 비밀.
(‘풀꽃2’)


기죽지 말고 살아봐
꽃 피워봐
참 좋아.
(‘풀꽃3’)


‘풀꽃’이라는 같은 제목을 가진 세 편으로 대중의 큰 사랑을 받은 시인. 그의 시는 행복은 남이 주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있으며 내가 찾아내는 것임을 느끼게 해준다. 가까이 있어 흔하고, 오래되어 소중함을 잊어버린 작은 것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게 바로 ‘행복’임을 말이다. 시인은 그러려면 작은 것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 감사하고 용서할 줄 아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나태주 시인의 시와 풀꽃문학관이 주는 평온함을 좋아하는 독자가 선물한 그림

노래가 되고 철학이 되고 인생이 되는 시

나태주 시인의 시는 간결하면서도 곱씹어보게 하는 매력이있다. 더불어 ‘젊은 시’라는 평가를 받는다. 온라인상에서 활발하게 회자되는 시를 모은 시선집 <꽃을 보듯 너를 본다>는 2015년에 발행되어 여전히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아이들은 아이들을 보고
젊은이들은 젊은이들을 보는데
자꾸만 노인들이 나를
흘낏거린다
그렇지만 나는 아이들을 보고
젊은이들을 본다.
(‘늙은 시인’)


“내 시 중에 ‘늙은 시인’이란 시가 있어요. 나는 늙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노인들이 저를 흘낏 봐요. 그렇지만 나는 아이들을 보고 젊은이들을 봐요. 내 이야기는 아이들과 젊은이들에게서 받은 이야기예요. 그러니 그들에게 다시 돌려주는 거예요.”
시인은 “좋은 시란 어린이에게 노래가 되고, 젊은이에게 철학이 되고, 노인에게는 인생이 되는 시”라는 괴테의 말로 자신의 시 세계를 설명했다. 젊은이와 노년층은 물론 아이들도 음미할 수 있는 단순한 시를 추구하는 이유다. 하지만 시인이 처음부터 이런 시를 쓴 건 아니었다. 10여년 전 시인은 담낭이 터져 생사를 오가는 고비를 넘겼다. 그리고 수년간 이어진 투병생활 속에서도 결코 펜을 놓지 않았다. 그 시절 시는 삶을 지탱해준 공기와도 같았다. 그 투병생활이 시인에겐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아프고 나서 시를 눈치 보지 않고, 꾸미지 않고, 떠오르는대로, 아이가 옹알이하고 말 배우듯이 써요. 내 시는 줄기에 두어 개의 이파리와 한 송이의 꽃이 핀 어린아이의 그림같아요. 하지만 그 뿌리에는 철학과 종교 그리고 인생론을 담으려 하죠. 내가 아팠을 때 시가 나를 살린 것처럼, 내 시가 어렵고 힘든 상황에 놓인 이들에게 상비약 같은 존재가 되기를 바라요. ‘나의 시에게’는 내 시가 다른 사람들에게 유용하길 바라는마음이 담겨 있어요.”

한때 나를 살렸던 / 누군가의 시들처럼
나의 시여, 지금 / 다른 사람에게로 가서
그 사람도 / 살려주기를 바란다.
(‘나의 시에게’)


시인은 자신의 시처럼 꼭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다. 그가 시인을 예술가이자 ‘감정의 서비스맨’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다. 연애편지 쓰는 마음으로 시를 쓰는 것도, 풀꽃문학관을 찾아와 사인을 요청하는 독자에게 정성껏 사인하는 것도 독자의 마음을 위로하고 다독여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아무 일 없고 편안한 것이 얼마나 좋아요!

매일 아침 일어나면 컴퓨터를 켜고 시집 원고를 살피는 시인. 벌써 내년에 출간할 시집의 원고까지 거의 다 써놓았다고. 지금까지 낸 시집만 40권에 달할 정도로 시 쓰는 일에 몰입했지만, 시를 쓰기 위한 감성은 아무 때나 분출되는 것이 아니다. “시는 ‘울컥’하면 ‘슥’ 쓰는 거예요. ‘울컥’이 뿌리라면 ‘슥’은 시를 낳는 거죠. 가슴 밑에서부터 ‘영감’이 ‘울컥’하고 올라오면 바로 ‘슥’ 써야 해요. 그래서 시는 집필한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배 속 아이가 밖으로 나오려고 할 때, 아이에게 주도권이 있듯이 시도 마찬가지예요. 시의 주도권은 시인이 아니라 바로 시에 있어요.”
시인은 지금껏 받아온 독자의 사랑을 생각하며 올해 초 일흔다섯의 노시인이 전하는 인생, 사랑,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산문집 <좋다고 하니까 나도 좋다>를 출간했다. 그리고 현재는 자전적 에세이를 집필 중이다. 시간이 날 때면 풀꽃문학관에서 나와 관람객들을 맞이하기도 한다. ‘날마다 이 세상 첫날처럼 아침을 맞이하고, 날마다 이 세상 마지막 날처럼 저녁을 맞이하자’는 시인의 좌우명에서 매일, 매순간을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시인은 각박하고 메마른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음풍놀월(吟風弄月)’의 자세도 필요하다며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젊을 땐 계획하며 살았지만 지금 내 나이는 그렇지 않아요. 다만 날마다 이 세상 첫날처럼, 날마다 이 세상 마지막날처럼 살아가는 거예요. ‘무사안일(無事安逸)’이라는 말이 나쁜 말처럼 들리는 세상이 됐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아무 일 없고 편안한 게 얼마나 좋아요. ‘오늘도 날이 저물었네. 오늘 다시 해가 떴네. 어제 왔던 새들이 또 와서 지저귀네’ 하면서요.”
어쩌면 우리가 잊어버리고 사는 게 바로 이런 삶이 아닐까싶다. 우리에게 주어진 소소하지만 소중한 것들을 느끼고 살아가는 마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