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시간이 이토록 간절해질 줄 몰랐어!
<우두커니> 심우도 작 | 다음 웹툰
어느 날부턴가 아버지가 변했다. 늘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가끔 살림 팁이 적힌 신문을 스크랩하던 아버지는 낯선 눈빛과 가시 돋친 말로 가족을 의심하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아버지는 치매에 걸린 것이다. 물론 전조 증상은 있었다. 눈치채지 못한 게 아니라, ‘아니겠지’ 하며 피하고 싶었던 마음이 커 모른 척했을 뿐.
웹툰 <우두커니>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와 살아가는 작가의 이야기다. 아버지가 치매에 걸렸다고 해서 삶이 180도 달라지지는 않는다. 발생한 사고(?)의 충격에 비해 삶은 느리게 흘러간다. 도대체 왜 나에게, 우리 가족에게 이런 사고가 발생한 걸까.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받아들이고 나름의 삶을 살아내는 수밖에. 가족은 현재 상황에 맞춰 새로운 일상을 꾸리기 시작한다. 인생의 씁쓸한 진실을 알게 된 작가가 꾹꾹 눌러쓴 이야기는 스크롤을 내리는 독자의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만든다.
치매에 걸린 부모와 산다는 건 과거와 현재, 미래를 동시에 살아내는 일이기도 하다. 가끔 ‘건강했던 아버지의 얼굴’을 발견하고, 자식을 사랑하고 단정했던 아버지를 떠올리다가, ‘앞으로 겪게 될 아버지와의 시간을 생각’하며 슬퍼진다. 그때 ‘좀 더 다정했더라면, 그래서 아버지의 마음이 좀 더 따뜻했더라면’ 하는 후회가 자꾸 떠올라 마음이 아리다. ‘모래알인 줄로만 알았던 나의 잘못들이 커다란 바위가 되어 짓누르는 것만 같다’고 고백하며 엉킨 실타래를 풀 듯 차근차근, 묵직한 이야기를 이어가는 작가의 목소리는 깊은 울림을 남긴다.
© 다음 웹툰
우리는 그렇게 가족이 된다
<어느 가족>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어느 가족>의 원작 소설 제목은 ‘만비키(万引き) 가족’, 즉 좀도둑 가족이라는 뜻이다. 말 그대로 물건을 훔치며 생활을 이어가는 이 가족의 특이사항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라는 것. 각자의 사연은 제쳐두고라도 이들의 오묘한 관계는 납득하기 어렵다. 아이들에게 좀도둑질을 가르치는 아빠와 이를 다시 동생에게 가르치는 오빠라니.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은 스스로에게 ‘가족이란 뭐지?’라며 반문하지만 영화는 끝날 때까지 속 시원하게 답을 내리지 않는다. 다만 스크린에 펼쳐지는 가족의 모습은 어느 순간부터 ‘가능하면 이들의 관계가 오래 이어졌으면 좋겠다’라고 바라게 만든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전부터 작품 속에서 다양한 가족 이야기를 선보였다. 그 과정은 ‘가족이란 무엇인지’라는 질문을 관객에게 던짐으로써 자신이 풀지 못한 숙제를 관객과 공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가족의 관계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하던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가족과 그 의미에 대해 ‘정의 내릴 수 없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가족은 어떤 형태로 규정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으로 <어느 가족>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의 질문이 담긴<어느 가족>은 칸 국제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어느 가족>에 등장하는 이들의 관계가 가족이냐, 아니냐를 두고 왈가왈부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가족이라면 마땅히 갖추어야 할 기준들이 허무맹랑하게 여겨지기까지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만큼이나 가족의 형태는 다양하다. <어느 가족>은 그 특별한 관계의 아주 일부분을 살짝 들여다본 것뿐이다.
산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
<인생> 위화 저 | 푸른숲 펴냄
말 그대로 한 남자의 인생을 담은 소설이다. 작가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그의 인생은 기구하다. 부유한 지주의 외아들로 태어나 발에 흙 한 줌 묻힐 일 없이, 기생과 도박에 빠져 하루하루를 보내던 남자. 만삭이 가까운 아내가 그의 마음을 돌리려 찾아왔지만 문전박대하며 도박에만 집중하다가 하루아침에 모든 재산을 잃는다.
남자는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홀어머니와 아내, 두 아이를 먹여 살려야 하는 처지가 된다. 아쉬운 대로 자신의 재산을 빼앗아간 이를 찾아가 밭을 빌리고, 농사일을 시작했다. 어깨너머로 배운 농사일은 쉽지 않을뿐더러 손도 느려 초반에는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는커녕 소작료도 채우지 못했다. 그런 삶에 익숙해질 무렵 남자는 난데없이 전쟁터에 끌려가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고향 땅을 밟았지만, 그 사이 가족의 상황은 더 악화됐다.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조잘조잘 말 잘하던 첫째 딸은 한 차례 크게 아픈 뒤 농아가 되었다. 이후에도 남자의 삶은 행운과 불행을 번갈아 가며 외줄타기하듯 아슬아슬하게 진행된다. 하지만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니 다시 농사를 짓고, 자식의 입신양명을 위해 열심히 살아간다. 그가 이렇듯 갖은 역경을 겪으면서도 묵묵이 살아가게 만든 동력은 가족이었다. 작가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생명이 우리에게 부여한 책임과, 현실이 우리에게 준 행복과 고통, 무료함과 평범함을 견뎌내는 데서 살아갈 힘이 생긴다’고 말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자신과 가족의 삶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한 남자의 평범한(?) 인생 이야기가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는 이유일 것이다.
<인생> 위화 저 | 푸른숲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