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동심의 기억을 떠올리며,
희망의 씨앗을 안고 돌아가다

지난 4월 18일부터 19일까지 1박2일 일정으로 제27차 희망씨앗 찾기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KLACC에서는 2011년부터 과몰입 위험 카지노 이용객들을 위한 치유 프로그램으로 ‘희망씨앗 찾기’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그동안 트레킹을 통한 명상 프로그램이 주를 이루었으나 2017년부터는 기존의 치유 프로그램을 재정비해 총 3단계의 단도박 및 책임도박(Responsible Gambling)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체계화했다. 1단계는 희망씨앗 찾기, 2단계는 명상 인문학 여행, 3단계는 동기강화 캠프로 구성되어 있다.
실제로 프로그램에 참가한 이후 카지노 출입일수를 줄이거나 출입 정지한 사례도 상당수 될 만큼 치유효과가 높은 프로그램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에 ‘지금 배우러 갑니다’라는 주제로 실시된 1단계 희망씨앗 찾기 프로그램은 화담숲 트레킹과 도자기 만들기 체험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1단계는 과몰입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배우고 즐거움을 느끼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또한 바리스타, 도예가 등 특정분야의 명인들을 만나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삶에 대한 도전을 느낄 수 있는 시간입니다. 카지노 밖 세상을 경험하며 내 삶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기도 합니다.
이번 제27차 희망씨앗 찾기에서는 도자기 명인도 만나고 실제로 도자기 만들기 체험시간도 가졌습니다.”
참가자들을 인솔한 박기쁨 선생의 설명이다. 그는 기존의 치유 프로그램을 3단계 프로그램으로 정비해 2년째 실시하고 있다. 첫날에는 아침 일찍 센터에서 출발해 이천 여명요에 도착한 후 도예가 이남신 선생의 강의도 듣고 직접 도자기 만들기 체험도 하며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다. 이후 경기도 곤지암리조트에 여장을 푼 후 첫째 날을 마무리했다. 둘째 날에는 리조트 인근의 화담숲에서 꽃구경을 하며 봄의 생명을 품은 숲의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실 수 있었다. 오후에는 이천의 여명요 도자기 체험장을 다시 방문해 도자기를 완성해내는 시간을 가졌다.

꽃이 만발한 화담숲 산책

꽃비가 내리는 화담숲, 새로움을 배우다

둘째날 아침 식사를 마친 참가자들이 화담숲 트레킹에 나섰다. 화담숲에는 벚꽃잎이 흰눈처럼 내리고 있었다. “벚꽃을 본 지가 몇 년이 되었는지 모르겠다”며 활짝 핀 벚꽃을 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이에게 “강원랜드 들어가는 길에도 벚꽃이 피었다”고 상기시켜주자 수없이 다녔던 길이건만 꽃을 본 기억이 없다며 놀라워한다. 그간의 삶이 얼마나 삭막하고 여유가 없었는지 새삼 깨달은 듯 씁쓸한 표정을 짓기도했다. 하지만 떨어지는 벚꽃잎을 잡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누군가의 말에 금세 소녀들처럼 두손을 허공에 휘저으며 꽃잎을 잡는 시늉을했다. 그 모습에 손벽을 치며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더없이 건강하게 들린다. KLACC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보니 ‘단도박’ 필요성만 줄기차게 강조하는 프로그램이겠거니 여겼지만,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박기쁨 선생은 좀처럼 단도박 관련 이슈는 꺼내질 않는다.
“단도박의 중요성이야 말하지 않아도 본인들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왜 안 끊느냐고 재촉하는 것이 치유에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요? 희망씨앗 찾기는 언뜻 보면 중독치유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어제도 도자기 명인이신 이남신 선생의 강연을 들었는데 주로 도자기 사랑, 도자기 만들기 등에 대한 내용이 전부였어요. 하지만 참가자들은 자신들의 삶과는 관련이 없는 이야기 속에서도 문득 깨닫는 게 있다고 하십니다.”

숲을 거닐며 힐링하는 트레킹 시간

흙을 만지며 순수한 동심을 배우다

오후에는 경기도 이천의 여명요를 다시 방문해 도자기 만들기 체험을 마무리했다. 여명요는 전통 도예작가 이남신 선생의 개인 도예장이다. 전날에는 1차 강연을 한 이남신 선생의 설명을 들으며 본격적인 도자기 만들기를 시작했다. 먼저, 전통 도자 기법을 그대로 재현해 그릇에 무늬를 그려 넣는 시간, 테이블 위에는 초벌된 컵과 철 안료 접시가 준비되어 있다. 백지 같은 도자기 잔에 안료를 이용해 원하는 그림을 그리면 된다. 그러나 참가자들은 붓을 잡고도 선뜻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한참을 고민하던 이들 중에는 그림 대신 누군가의 이름이나 ‘사랑하는 아들’ ‘백년의 꿈’ ‘이 순간의 행운’ ‘승리’ 등과 같이 가족에 대한 애틋함이나 스스로를 다짐하는 글자를 쓰는 이들도 있었다.
두 번째 체험은 직접 도자기를 빚는 체험이다. 잘 만든 사람들에게는 깜짝 상품도 마련되어 있다는 말에 참가자들의 눈빛이 반짝거린다. 각자 원하는 모양새를 내다가 성급하게 욕심을 내어 형태가 퍼져 버리면 뭉개고 다시 처음부터 차곡차곡 쌓아올린다. 이남신 선생은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도자기를 빚을 때도 욕심을 내면 제 모양을 낼 수 없다’고 강조한다.

화담숲 트레킹 이후 이천에 위치한 도자기 체험장을 찾았다.

“인생에도 방향설정이 중요하듯이
도자기에 그림을 입힐 때도 방향을 생각해야 합니다.
상대방에게 보여주고 싶은 그림을 그릴 것인가
내가 보며 즐길 그림을 그릴 것인가에 따라
그림의 위치도 달라집니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도자기를 빚을 때도 욕심을 내면 제 모양을 낼 수 없다.

‘10분 남았다’는 말에 참가자들은 마지막까지 손질을 하느라 여념이없다. 모처럼 카지노를 벗어나 일확천금의의 욕심을 내려놓은 채 한층한층 천천히 쌓아올린 도자기들. 각자의 개성이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듯하다.
참여 소감을 묻는 질문에 ‘좋다’며 웃는다. 어떻게 좋으냐는 질문이 이어지자 ‘너무 좋다’고 한다. 한 번 더 물으면 ‘너무 너무 좋다’고 말할 기세이지만 좋다는 짧은 말에서조차 참가자들의 진심이 묻어난다.
“알다시피 우리는 도박 중독문제로 탈이 난 사람들입니다. 우리 같은 사람이 누구에게 도움이 될 수나 있을까 늘 생각합니다. 그런데 도자기를 만들면서 서로를 챙기고 도움을 주고받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런 것이 작은 변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마지막 평가의 시간도 진지하다. 한자씩 꾹꾹 눌러 쓰는 모습에도 진심과 간절함이 담겨있다. 희망의 씨앗 같은 건 믿지 않았던 사람들이지만 저마다의 가슴에 아직 발견하지 못한 씨앗이 있다는 사실을 믿기 시작한 것만으로도 큰 변화가 아닐까. 평가서를 내는 한 참가자는 ‘희망의 씨앗을 안고 갑니다’라며 인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