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해외는

세계는 지금
‘감정 균형’을 찾는 중

글. 양원모

‘독성 긍정성(Toxic Positivity)’은 부정적 감정을 무시하고 무조건적인 긍정만을 강요하는 태도를 뜻한다. 정신건강 전문가들에 따르면 과도한 긍정 강조는 오히려 정신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 최근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는 메시지가 폭넓게 확산되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이 ‘긍정의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는 방증이다.

“당신의 감정은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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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에선 “It’s okay not to be okay(괜찮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슬로건이 정신건강 캠페인의 핵심 메시지로 자리잡고 있다. 셀레나 고메즈, 비너스 윌리엄스 등 유명인들이 자신의 우울증과 불안 장애 경험을 공개하며 인식 개선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ABC 방송의 기상캐스터 진저 지는 “우울증이나 치료를 받는다고 말할 때 눈썹을 치켜올리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어 기쁘다”면서도 “입원 치료 등에 대한 낙인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지적했다.

미국 정신건강 단체들은 ‘일상 언어’부터 바꿔나가자고 제안한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 “다른 사람들은 더 힘들다”같은 독성 긍정적 표현 대신 “당신의 감정은 타당하다”와 같은 공감적 표현을 사용하라는 것이다. 캐나다의 ‘벨 렛츠 톡(Bell Let’s Talk)’ 캠페인은 현지 최대 이동통신사 벨(Bell)이 정신 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를 위해 진행하고 있는 자선 캠페인이다. 이 캠페인은 2024년 ‘진짜 변화를 만들자’는 슬로건 아래 ‘단순한 대화’를 넘어 ‘실질적 행동’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급변한 현지 상황 때문이다.

정신건강연구캐나다의 보고서에 따르면 캐나다 청소년 57%는 필요한 정신건강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16-24세 청소년 24%가 자살 충동을 경험했다. 이에 캠페인은 정신건강 단체 후원하기, 어려움 겪는 친구 돕기, #BellLetsTalk 해시태그로 경험 공유하기 등 구체적 실천 방안을 제시함으로써 행동 변화를 끌어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정부 차원의 구조적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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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초등학교·중학교에 ‘마음건강 커리큘럼’을 도입, 어린 시절부터 정신건강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있다. 2024년 어린이 정신건강 주간의 주제는 ‘나의 목소리가 중요하다’로, 아이들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중점을 뒀다.

영국 국영 의료 서비스(NHS)의 ‘Help Us, Help You’ 캠페인은 30~50세 성인과 소수민족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통계에 따르면 남아시아계 응답자 64%, 흑인 커뮤니티 66%가 정신건강에 우려를 느끼고 있다. NHS는 이 같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다국어 치료사와 통역 서비스를 통해 문화적 배경을 고려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실질적 멘털 케어에 초점을 맞춘 정책들이 시행되고 있다. 후생노동성은 지난해 연례 보고서 주요 주제로 ‘정신건강 문제를 해결해 건강한 삶을 보낼 수 있는 사회 만들기’를 선정하고 50인 이상 사업장의 연 1회 스트레스 체크 등을 의무화했다. 2021년 정신건강 장애에 따른 산재 신청이 2,346건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면서다.

일본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긍정에 대한 압박은 일본의 집단주의 문화와 결합돼 더 심각한 문제를 부르고 있다”고 지적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의 우울증 유병률은 2020년 17.3%로, 2013년 7.9%에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긍정 중독은 사회 구조적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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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전 세계적으로 독성 긍정성에서 벗어나 진정한 감정 수용을 추구하는 흐름이 확산되고 있다. ‘무조건적인 긍정’보다 모든 감정을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적절한 도움을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커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긍정 중독은 개인이 아닌 사회 구조적 문제”라며 정부, 기업, 교육 기관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 개인에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압박하는 대신, 그가 처한 환경과 상황을 개선하는 것이 먼저라는 취지다.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건 완전무결한 행복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고 함께 회복해 나가는 지혜다. 각국의 정책 변화와 캠페인들은 이런 인식 전환의 신호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