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신나라 참고.건강보험심사평가원 외 다수
등산 후 라면 한 젓가락, 규칙적으로 이어진 보도블록 무늬. 사소한 일에서도 쾌감과 즐거움을 찾아, 일상을 꾸준히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물질이 있다. 바로 도파민이다. 길거리에서도, 대중교통에서도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한 사람들의 손이 위아래로 쉴새없이 움직인다. 도파민 터지는 콘텐츠를 찾아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을 떠돌던 우리에게, 언제부터인가 디지털 디톡스를 외치는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지난해 한국 사회를 크게 흔든 키워드라면 단언컨대 도파민이다. 도파민은
뇌 속의 보상회로를 활성화해 욕구와 행복감을 만들어내는 중추신경계의
신경전달물질 중 하나이지만, 대체로는 자극적인 즐거움과 재미라는 뜻으로
통용되고 있다. 도파민의 용례가 확장되면서 ‘도파민’이라는 전문용어를
일상에서도 무척 익숙하게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즉각적이고 과도한 자극을 쫓는 '도파민 중독'에 대한 우려도
동시에 대두되었다.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행복감을 느끼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도파민 수용체가 과다하게 분비되는데, 이때 도파민 공급이 이전보다
줄어들면 일종의 금단 증상에 빠지게 된다. 더욱 강렬한 자극이 있어야
유사한 수준의 행복감을 느끼게 되어 일상적 자극에는 무감각해지고,
무기력감과 우울감이 오히려 심화되는 것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2년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로
병원을 찾은 환자가 2018년 대비 2.4배 증가했으며, 이 중 20대와 30대
환자의 증가폭은 각각 4배, 7배에 달했다. 디지털 디톡스, 디지털
단식이라고도 불리는 이 트렌드는 뇌가 자극적인 콘텐츠에 익숙해져
집중력이 크게 저하되고, 도파민 중독이 뇌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이야기에 경각심을 가지고, 대중들이 스스로의 마음 건강까지
챙기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도파민 디톡스를 돕는 공간도 인기다. 지난해부터 ‘스마트폰 이용 금지’
북카페가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으며, 여러 사람과 모여 앉아 옛 방식으로
음악을 듣는 음악감상실도 새로운 디톡스 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다.
스마트폰 중독을 제어하기 위한 앱과 휴대폰을 정해진 시간 동안 보관함에
가두는 ‘스마트폰 감옥’ 제품에 대한 관심도 늘어나고 있다.
인터넷 서점 예스24는 2023년 10월 기준 뇌과학 관련 도서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48.8%나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2023년에 이어 2024년에도
교보문고 베스트셀러에 뇌과학 관련 도서가 선정되기도 했다. 어렵고
까다로운 전문용어의 장벽을 넘어, 나의 마음 상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보다 적확한 해결방안을 찾고자 하는 현대인의 욕구가 반영된 것이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짧고 강한 자극을 제공하는 스마트폰 자체를 멀리하는
것이다. 휴대전화를 곧장 손에서 떼놓는 것이 어렵다면 화면을 흑백으로
바꾸는 것도 도움이 된다. 화면의 생동감과 현장감이 떨어지면 콘텐츠에
흥미를 가지기 어려워진다. 템플스테이처럼 디지털 콘텐츠와 물리적으로
차단된 환경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도 좋고, 독서나 필사, 뜨개질 등 긴
시간 몰입하기 좋은 다른 취미를 갖는 것 역시 좋은 방법이다. 특히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거나 쓰는 행위는 성과를 눈으로 볼 수 있어 인지적 노력과
집중력이 보상회로와 연결되도록 도와준다.
도파민 디톡스는 도파민을 분비하는 모든 행위에서 완전히 해방되자는 것이
아니다. 과도한 자극으로 예민해진 뇌에게는 진정할 시간을 주고, 우리에게
작은 기쁨을 주던 일상적 요소들이 가치를 잃지 않도록 돕는 일이기도
하다.
오늘 나의 일상에는 행복한 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나의 ‘도파민’이 된 일들을 가만히 들여다보자. 이 느린 도파민이 주는
행복감은 새삼스럽고, 또 각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