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형색색 장미꽃이 만개한 삼척장미공원을 함께 거닐며 동갑내기 친구 경호 씨(가명)와 민식 씨(가명)는 지난날을 돌아보았다. 공감과 위로를 거쳐 더욱 깊어진 우정을 나누고 있는 두 사람의 특별한 삼척여행 이야기를 들어본다.
© 홍영기
몸과 마음을 다독여준 마음의 고향, 삼척
경호 씨에게 삼척은 각별한 곳이다. 10년 전 중풍으로 병원에서 지내다가 퇴원 후 5년을 삼척에 집을 얻어 지내며 요양생활을 했다. 삼척 앞바다 모래 위를 거닐며 몸이 굳지 않도록 꾸준히 운동을 했고 장미가 절정을 이루는 5월마다 삼척장미공원을 찾아 몸처럼 굳어가는 것만 같은 마음도 달래곤 했다. 해마다 이맘때면 떠오르는 이곳을 클락에서 맺은 소중한 인연, 동갑내기 민식 씨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다.
삼척장미공원은 총 218종 13만 그루 1천만 송이의 장미가 단일 규모로는 세계 최대 수량을 가진 삼척의 대표 명소다. 태백에서 흘러내린 강물과 태백산맥이 조화를 이루는 오십천변 8만5,000㎡ 축구장 5개 규모로 조성된 공원 일대에 색색깔의 장미꽃 군락이 아름다운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조금씩 떨어지는 빗방울 덕분에 사람들로 붐비지 않아 오히려 한적하게 이야기 나누기 좋은 날이었다. 두 사람은 장미넝쿨로 덮여 있는 동굴 모양의 산책로를 나란히 거닐며 도란도란 대화하고 사이좋게 기념사진도 남겼다. 비록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흐린 날씨였지만 빨강, 노랑, 분홍 형형색색 영롱한 빛을 뿜어내는 장미 꽃송이가 환하게 두 사람을 반겨주는 것만 같았다.
공감에서 시작된 우정
두 사람은 만개한 꽃송이 사이를 함께 걸으며 처음 만나던 날을 떠올렸다. 경호 씨가 이제 막 단도박을 결심한 민식 씨를 처음 만난 곳은 1박 2일로 떠난 단도박자 워크숍에서였다. 단도박 5년차였던 경호 씨는 숙소에서 같은 방을 쓰게 된 민식 씨를 조금이라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먼저 다가가 말을 걸고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단도박 초기가 가장 힘들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경호 씨였기에 공감 가득한 대화 속에서 동갑내기 두 사람은 금방 친구가 되었다.
알고 보니 민식 씨는 카지노 외에도 경마며 경륜이며 안 해본 도박이 없을 만큼 오랫동안 중독의 늪을 헤매던 사람이었다. 오랜 시간 빠져 있었기에 헤어 나오는 과정도 더 힘들었다. 어렵사리 단도박을 결심한 민식 씨에게 5년 가까이 마음 지켜온 단도박 선배 경호 씨는 여러 모로 큰 힘이 되었다. 가족에게조차 꺼내기 힘들었던 단도박 과정의 어려움도 경호 씨에게 만큼은 마음껏 털어놓을 수 있었다. 다시 유혹이 찾아올 때 빠져들지 않게 붙들어준 것도 경호 씨였다. "욕심을 두면 네 욕심 둔 자리까지 잊어버린다. 가진 것에 만족 못하면 가진 것까지 다 잃어버린다." 민식 씨는 요즘도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언젠가 경호 씨가 해준 그 말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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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용기 내어 다가갈 수 있었던 이유
두 사람은 장미공원을 둘러본 후 차를 타고 삼척 새천년도로를 드라이브 하며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와 기암절벽을 감상했다. 마음 깊이 남아있던 근심까지 다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새천년도로 가까이 오션뷰로 유명한 카페에 들러 사이좋게 차도 한 잔씩 마셨다. 이 카페도 경호 씨가 삼척에서 지낼 때 즐겨 찾던 곳이다.
경호 씨에게도 단도박은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찾아온 중풍은 그의 마음까지도 조금씩 병들게 했다. 어느 날 정동진을 향하던 기차에서 시작된 호기심이 그의 발걸음을 강원랜드로 이끌었다. "우울증으로 마음이 괴로울 때마다 시끌벅적 화려한 카지노에 앉아 있으면 굳었던 몸도 풀리고 엔돌핀이 생기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어요." 도박에 빠져 게임할 돈이 부족할 때마다 중풍에 좋은 명약을 구한다는 핑계로 어머니께 손을 내밀었다. 어머니께 돈을 받으면 또다시 카지노 찾기를 반복했고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던 거짓말은 딸을 향한 거짓말로 번졌다. 그렇게 딸이 보내준 돈까지 도박으로 다 잃었을 때 그제서야 퍼뜩 정신이 들었다. "아버지로서 딸 앞에 더 이상 이렇게 창피하게 살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018년 11월, 딸에게 받은 돈까지 카지노에서 다 잃었던 그날, 경호 씨는 처음으로 강원랜드중독관리센터(클락)을 찾았다. 진심어린 눈빛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클락 전문위원들의 태도는 그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클락 프로그램 중 2박 3일로 떠난 워크숍에서 다른 단도박자들의 경험담을 들으며 펑펑 울기도 했다. 가까운 이들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중독의 괴로움을 먼저 경험한 이들이었기에 깊은 동질감을 느꼈고 그동안 답답했던 속이 다 후련해지는 기분이었다. 경호 씨가 민식 씨를 처음 만났을 때 먼저 용기 내어 다가갈 수 있었던 건 앞서 단도박 선배들로부터 받은 위로를 그에게 전해주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감사에서 피어나는 행복
단도박 5년차 경호 씨는 도박에 대한 욕구가 다시 솟아오를 때마다 시선을 돌릴 수 있는 다른 일에 집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4년 전 클락의 도움으로 처음 접한 파크골프는 이제 경호 씨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스포츠가 되었다. 중풍 후유증으로 아직 오른손이 불편하지만 노력 끝에 파크골프 지도자 자격증도 취득해서 요즘은 가르치는 일도 조금씩 하고 있다. "하루하루 숨쉬고, 걸어 다닐 수 있다는 것, 지금 주어진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해요. 더 바라는 것 없어요. 친구도 이 행복을 깨닫고 함께 누렸으면 좋겠어요." 경호 씨의 마음 가득 소박한 이 행복이 민식 씨를 비롯한 모두의 마음속에 장미꽃처럼 활짝 피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