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했던 신라의 문화와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천년고도 경주에도 봄꽃은 이미 피고 지고 떨어졌다. 토함산의 그 유명한 불국사와 석굴암 가는 길에는 그래도 붉은 영산홍과 철쭉들이 남아 나들이객들의 마음을 달래주고 있었다. 도박 중독의 심각성을 자각하기 시작한 15명의 참가자들은 자신의 변화가 나비의 날갯짓으로 폭풍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 하나가 변함으로써 내 가족과 주위의 사람들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 일이었다. "저는 아직 심각한 단계는 아니지만, 하루라도 빨리 변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한 참가자의 말처럼 모두 과몰입 단계에 접어들기 전에 조금이라도 마음을 다잡고 싶어 했다.

인문학은 중독 치료에 긍정적

강원랜드 중독관리센터 KLACC에서 마련한 2023년 과몰입예방 2단계 단기캠프형 인식완화 프로그램이 지난 4월27일부터 1박2일간 경북 경주시 일원에서 길 위의 인문학 봄길 따라' 라는 주제로 펼쳐졌다.
사실 '인문학'이라는 분야가 중독에 어떤 효과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그 의문은 이내 어떤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마치 석가모니 부처가 문득 깨닫던 그 순간과도 같은 놀라운 경험이었다.
프로그램을 준비한 김영주 전문위원은 "알코올중독 치료과정에서 중독자들의 정서적 방어기제인 주관적 논리가 지배하는 정서의 변화를 위해 사고적 논리를 내면 자아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인문치료 관점에서의 통합적 치료개입이 필요하다"는 선행연구를 들어 이번 프로그램을 준비해 왔다고 밝혔다. 그는 "인문학의 치료적 효과가 도박중독에서 벗어나는 데에 일정부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사실 치료효과와 상관없이 신라시대 당시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독특한 문화도시 경주에서 머문다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맑고 깨끗해지는 느낌이었다.

클락을잇다2 사진1 © 강수천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 준 소중한 경험

첫날은 먼저 석굴암과 불국사를 돌아보는 일정을 가졌다. 앞서 서로의 얼굴을 익힌 참가자들은 경주에 도착한 뒤 바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석굴암이 위치한 토함산을 올랐다. 구불구불 휘돌아 오르는 길에서 흔들리는 몸을 애써 바로 유지하려 애썼다.
석굴암과 불국사 일정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문화해설사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국학연구소 임찬웅님이 동행해 직접 강의를 진행했다. 석굴암의 사찰로서의 역할과 역사를 간단히 들은 뒤 직접 석굴암에 올라 석불을 만나고, 이어서 석굴암 석불의 특징들을 들었다. 이후 다시 석굴에 들어가 석불을 마주하게 되었는데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석불을 바라보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알면 달리 보이는 세상의 이치를 이렇게 경험하게 될 줄이야.
석굴암을 내려와 불국사에 도착했다. 불국사에서도 역시 고대 신라인들의 문화에 새롭게 놀라며 다보탑과 석가탑으로 상징되는 신라의 석탑과 청운교 백운교 등 불국사를 완성하는 다리의 돌 하나까지 새로운 시각으로 마주하게 된 시간이었다.
석굴암과 불국사를 돌아보며 석탑과 다리와 건물들을 바라보는 참가자들은 알지 못할 신비한 힘에 매료되어 자신을 저절로 돌아보게 됐다. 수학여행 이후 처음 불국사를 찾는 것이라는 참가자도 있었다.
임찬웅 선생의 현장 강의에는 일행 외에도 사찰을 찾은 일반 관광객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 엿듣는 경우가 많았다. 그는 “우리나라 역사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통해 ‘나’는 왜 불안할까? 나라면 어땠을까? 왜 그런 행동과 결정을 했을까? 심리는 어떠했을까? 등을 탐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인문학적 접근의 역할을 기대했다.
참가자들은 스스로의 선택으로 이번 인문학 여행에 참여했듯이, 도박이라는 중독에서도 스스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노라고 했다.
두 사찰을 돌아보며 자신의 종교를 떠나 찬란했던 고대 도시의 신비를 몸소 경험한 이후 숙소로 돌아와 소매틱 명상치유 전문가인 육영숙 교수와 함께 명상의 시간을 가지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클락을잇다2 사진2 © 강수천

나 하나 꽃 피어 세상이 꽃밭 되는

둘째 날에는 아침 명상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 뒤 경주의 과거가 둥실둥실 모여있는 대릉원을 찾아 시간을 거슬러 가는 체험을 했다. 특히 대릉원 인근의 첨성대와 계림, 월정교, 경주최씨 고가 가는 길을 찾아 어제의 사찰 여행과는 또 다른 경주 문화의 정수를 맛본 뒤 다례체험 및 소감 나눔을 끝으로 캠프를 마무리했다. 한 참가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조동화 시인의 시 ‘나 하나 꽃 피어’에서 나 하나 꽃 핀다고 풀밭이 달라지겠느냐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 보는 시간이었다고 전했다. 나 하나가 달라짐으로써 내 주위와 내 사람들이 모두 달라질 수 있다는 소중한 경험의 시간이었다.

나 하나 꽃 피어  조동화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 피고 나도 꽃 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