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는 세계에서 슬롯머신이 가장 많은 국가다. 전 세계 인구의 0.5%를 차지하면서 세계 슬롯머신의 20%를 소유하고 있다. 호주 퀸즐랜드주(州) 정부가 발행한 보고서 등에 따르면 호주인 10명 가운데 6명은 살면서 최소 한 번 이상 도박을 경험한다. 호주 국민이 한 해 도박에 지출하는 금액은 약 250억 호주달러(약 22조원, 2018~2019년 기준)로 추정된다.
도박 중독 해결의 첫걸음은 '일상'애서부터
호주는 10여 년 전부터 다양한 도박 중독 예방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도박 중독이 '국가적 문제'로 번지면서부터다. 도박 개혁을 위한 연맹(TAGR)과 호주 보건복지연구원(AIHW)에 따르면 호주에서는 매년 400명이 도박 관련 문제로 극단적 선택을 하고, 전체 인구의 7.2%가 도박 중독 위험군(2018년 기준)으로 분류된다.
'도박 중독'은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주변 도움이 필요하다. 뉴사우스웨일스(NSW)주 정부의 도박책임국(ORG)이 운영하는 도박 중독 예방 기관 '겜블어웨어(GambleAware)'는 주민들이 도박 중독으로 고통 받는 가족, 친구, 동료를 도울 수 있도록 전문적 상담을 제공하고 있다.
'하우 투 오퍼 서포트(How to offer support)'' 프로그램은 도박 중독 치료가 의사 등 특정 전문가의 영역이 아니라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일상적 관계에서도 도움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도박 중독으로 고통 받는 사람에게 어떻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하는지 가족, 친구, 직장 동료별로 구체적인 대응 방법을 소개한다.
해당 프로그램은 통역 서비스도 지원된다. 영어를 비롯해 중국어, 베트남어, 아랍어, 이탈리아어 등 총 40개 언어로 상담을 받을 수 있다. 호주는 출산율 감소를 해결하기 위해 1970년대부터 적극적인 이민 정책을 펼쳐왔다. 2022년 기준 호주 전체 인구의 30%는 이민자다. '다민족 국가' 호주의 단면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도박, 가정 폭력과 상관관계 높아… 아동 학대 가능성 ↑
코로나19는 '도박 천국' 호주의 도박 이용 행태를 바꿔 놓았다. 전체 도박 이용 횟수는 감소했지만 경마, 도그 레이싱 등 일부 분야는 오히려 코로나19 이전보다 증가한 것으로 파악됐다. 도박 개혁을 위한 연맹이 진행한 설문 결과에 따르면 만 18~34세 남성의 경우 코로나 기간 매달 도박으로 지출하는 비용이 687달러에서 1087달러로 늘어났으며, 3명 가운데 1명은 온라인 도박 계정을 새롭게 만든 것으로 조사됐다.
호주 주 정부들의 노력으로 도박 중독 위험군은 수년간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그러나 6만명에 달하는 인구가 여전히 도박 중독에 시달리고 있고, 최소 20만 명의 아이들이 도박 중독 부모 밑에서 자라고 있다. 호주국립대 도박문제연구소 아이노 수오미(Suomi) 박사는 "가정 폭력과 도박 사이에는 상당히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며 "부모의 도박 중독은 자녀의 아동 학대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겜블어웨어의 하우 투 오퍼 서포트는 부모의 도박 중독이 아이들에게 끼칠 수 있는 위험성을 일깨우면서, 아동·청소년의 도박 중독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도박 중독을 예방을 위한 워크숍 개최 △무료 전화 상담 △도박에 중독된 아동·청소년들이 보이는 주요 징후 등에 대한 정보 등을 제공하며 전방위적 지원을 펼치고 있다.
© GambleAware
주 정부 기금으로 운영… "도박 이용자 20%가 도박 관련 문제 경험"
하우 투 오퍼 서포트를 총괄하는 겜블어웨어는 NSW주 정부가 만든 책임있는도박기금(RGF)의 자금 지원을 받아 운영된다. NSW주 정부는 1992년 카지노 관리법을 신설, 관내 카지노 업체에서 발생한 수익의 2%를 RGF에 기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재정장관 판단에 따라 카지노 베팅 관련 세금의 일부를 RGF에 지급하는 것도 가능하다.
NSW주는 호주 8개 주 가운데 도박 규제에 가장 적극적인 곳이다. 그러나 친(親)도박 성향 단체의 로비에 가로막혀 번번이 개혁이 좌절되고 있다. 주지사가 업계 반발을 무릅쓰고 도박 산업을 규제하는 법안을 추진했다가 해고된 적도 있을 만큼 도박업계의 입김이 세다. 막대한 세수도 무시할 수 없다. 블룸버그 통신 등에 따르면 호주 주 정부들은 도박 산업으로 매년 약 58억 호주달러(약 5조 1987억원)의 세금을 걷고 있다.
겜블어웨어는 "NSW에 거주하는 성인의 50% 이상은 매년 최소 1회 도박을 하고, 이 가운데 20%는 도박 관련 문제를 경험한다"며 "대다수 사람에게 도박은 가벼운 오락거리로 소비되지만, 누군가에게는 중독의 형태로 나타난다. 겜블어웨어는 비밀이 보장되는 무료 상담을 통해 이들을 올바른 길로 이끄는 데 힘쓰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