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도박에 빠지면 어떻게 해요."
홀덤펍을 기사 아이템으로 정하고 후배 기자에게 들은 첫 대답이다. 순간 별생각이 다 들었다. '기자가 해보지도 않고 빼는 건가' 하는 꼰대 같은 생각부터 '하기 싫어서 돌려 말하는 건가' 하는 조심스러운 짐작도 들었다. '진짜 도박에 빠지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불법 사행성 홀덤펍이 하나둘 경찰에 단속되는 현실을 알지만, 이번엔 합법 홀덤펍을 다루려고 했다. 홀덤펍에서 진행되는 텍사스 홀덤은 이미 해외에서 인기가 많은 스포츠다. 합법적인 스포츠 영역에서 게임을 즐기는 건 괜찮지 않을까. 그래서 '도박에 빠진다'는 표현에 동의하기 어려웠다. 괜찮을 거라며 후배 기자를 다독이고 함께 홀덤펍에 직접 가보기로 했다.
후배 기자는 첫 게임에서 2위를 차지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기자도 흥분 상태였다. 여러 번 운이 따랐다. 하지만 같은 테이블에 있던 숙련된 플레이어를 차례로 제친 것도 사실이다. 운이 중요한 게임이라지만, 이렇게 초심자의 행운이 터질 줄 몰랐다. 한껏 고양된 우리와 달리, 다른 플레이어들의 표정은 평온했다. 예상치 못한 뒤집기로 결과가 뒤바뀔 때만 탄성이 터졌다. 홀덤에 익숙해 보이는 플레이어들은 대체로 무료한 표정이었다. 1등을 차지한 플레이어 역시 게임 내내 무표정이었다. 게임에서 이기는 잠깐의 쾌감을 위해 지루한 시간을 견디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초보 티가 많이 나는 우리에게 친절하게 룰을 설명해줬다. 하다보면 곧 게임에 익숙해질 거란 조언도 들었다. 익숙해지는 것이 게임 룰인지, 무료한 태도인지 알 수 없었다.
게임을 마친 후배 기자는 다행히도 금방 정신을 차렸다. 우린 홀덤펍을 체험한 소감과 게임 진행 과정, 분위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홀덤을 도박으로 볼 것인지, 스포츠로 볼 것인지 의견이 나뉘었다. 후배 기자는 당연히 도박이라는 입장이었다. 홀덤펍에서 가상 포인트로 한두 번 하다가 자연스럽게 더 큰 돈을 걸고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였다. 내 입장은 달랐다. 그동안 홀덤 같은 포커 게임이 음지에서 도박으로 소비됐지만, 이제 막 양지로 나온 것에 의미가 있다고 얘기했다. 마땅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양면성이 존재한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누군가에겐 스포츠, 누군가에겐 도박
시간이 흘러도 명쾌하게 답을 내기 어려운 문제였다. 홀덤펍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에 동의하기 어려웠다. 바둑, 장기, 체스, 브리지 등과 함께 마인드 스포츠로 분류되는 홀덤은 2028 LA 올림픽 시범종목 채택을 노리는 등 점점 국제적인 스포츠로 인정받는 분위기다. 전 프로게이머인 임요환과 홍진호 등은 해외 홀덤 대회에 참가해 우승 소식을 전해온다. 운이 필요한 게임이지만, 두뇌를 활용해 상대와 수 싸움 하는 플레이가 중요한 점이 스포츠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유독 국내에서만 스포츠가 아니어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문제는 홀덤을 소비하는 국내 현실이다. 경찰이 몰래 도박판을 여는 사설 홀덤 도박장을 덮치거나, 합법 홀덤펍으로 위장한 불법 홀덤펍 일당을 검거했다는 기사가 연일 나온다. 누군가에겐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스포츠다. 동시에 누군가에겐 여전히 큰돈이 오가는 도박이다. 아무리 스포츠로 인정받는다 해도, 홀덤 특유의 강한 중독성과 도박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홀덤펍이 인기를 얻으며 불법 도박장이 성행하기 쉬워진 측면도 있다. 새롭게 홀덤을 접하고 불법 도박에 발들일 가능성도 열려있다. 불법 도박을 하면 안 된다는 인식, 홀덤을 가벼운 스포츠로 즐겨야 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누구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강한 중독성은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 것이다. 개인의 선택에 많은 것을 맡기도록 방치한다. 괜히 첫 카지노 게임에서 크게 잃은 사람에게 '신이 준 선물'이라 축하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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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든 넘을 수 있는 선
기사를 쓴 후 '그래서 홀덤펍이 전부 불법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는 현금 환전 여부다. 홀덤펍에서 획득한 칩이나 포인트를 현금으로 교환하면 불법이다. 칩을 상품권, 상품 등으로 제공해도 사행행위규제법 위반이다. 불법 홀덤펍을 운영한 사람은 영업소 폐쇄 및 3년 이하의 징역,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최근 홀덤펍 숫자가 크게 늘기도 했다. 대한스포츠홀덤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7월 시장조사 결과 홀덤펍으로 사업자 등록한 매장이 전국 약 2800여곳으로 2년 전보다 1000여곳 늘었다. 불법적으로 운영되는 곳과 일반 음식점이나 보드게임으로 우회해 운영하는 곳까지 포함하면 7600여곳으로 추정된다.
성실하게 합법과 불법 홀덤펍에 대해 설명해도 왠지 잘 알아듣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곳곳에 많이 생기고 있어 들어가 보기 전까지 알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현금이 아닌 포인트를 많이 따면 불법이 아닌가 하는 반응도 많았다. 이익이 되는 뭔가를 두고 카드 게임을 하는 건 여전히 도박으로 보이는 듯하다. 완전히 다른 세계인 도박과 스포츠 중간에 그어진 선을 설명하기 어렵다. 그 선이 누구든, 언제든 쉽게 넘어갈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마치 외국에서 국경을 건너갈 때 생각보다 쉽게 넘을 수 있는 국경선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어쩌면 합법과 불법의 모호한 경계가 문제일지도 모른다. 사실 그 경계를 쉽게 넘을 수 있어선 안 되는 것 아닐까. 거대한 벽을 사이에 두고 친구들과 즐겁게 즐기는 게임, 돈을 따기 위해 열을 올리는 도박. 두 세계가 완전히 분리된 것처럼 느껴야 하지 않을까. 그 벽에 몰래 구멍을 뚫는 일을 심각하고 거대한 범죄로 느껴야 쉽게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 이미 불법 도박에 빠진 이들을 처벌하는 건 분명 중요한 일이다. 동시에 더 많은 사람들이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서 헤매지 않도록 하는 일 역시 중요하다. 더 심한 중독으로 이끄는 불법 도박의 길을 차단하길, 홀덤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대중적 스포츠로 살아남길 기대한다.